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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꿈꾸세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윤지영



"머릿속으로 하루 업무를 정리하면서, 또 한편으론 출근하느라 미처 정리 못한 어제의 감정 편린들을 떠올리면서 지하철을 타러 갔어. 근데 아직 승강장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지하철이 도착해버린 거야. 오늘은 무시무시한 월요일. 지하철은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쏟아냈어.



며칠 전엔 그 모습이 비엔나 소세지를 만들어내는 기계 같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그런 상상을 할 겨를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잽싸게 지하철에 올라타야만 했어.



나 고딩때 지하철 문에 낀 적 있거든. 당시 아프고 창피했던 경험 때문에 그 후론 이렇게 서둘러서 지하철에 타지 않는데 오늘은 월요일 저녁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싶었고, 성공했어! 곧바로 피슈숙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히더라. 나도 휴우우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종로 3가에서 출발한 3호선은 두 정거장 뒤 충무로에서 정차했어. 집으로 가려면 내려서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계단을 올라야 하거든. 기계적인 걸음으로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지. 막 계단을 다 올랐을 때에, 뭐여, 또 4호선이 소세지같은 사람들을 내보내는 게 아니겠어?



나처럼 각자의 남은 월요일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은 전장에 나가는 군사처럼 비장하게 내 반대방향으로 밀물처럼 떠밀려오기 시작했어. 연어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위대하고, 나는 이 인파를 뚫고 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위대해지기로 했지. 혹여나 발이 꼬여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나는 가뜩이나 좁은 어깨를 한번 더 접고 틈새시장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가 길을 만들었어.



다행히 이번에도 무사히 탈 수 있었어. 덜컹거리며 4호선이 출발했고 지영 소세지! 두 번이나 선방했네! 그리고 곧바로 새로 읽기 시작한 소설책을 폈어. 눈 앞으로 활자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할 무렵 내 바로 앞에 자리가 난 거야. 이상하다. 오늘 온 메트로가 나를 도와주는 느낌이랄까.








월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요일이야. 주말 동안 흐트러진 업무 루틴을 바로잡는 게 고단하긴 하지만 퇴근 후 글을 쓰기로 나 스스로 약속한 요일이거든. 최근 몇 주간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약간 힘들었었어. 그래서 고심해 고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영향을 받아보려 하고, 영감이 얻어질까 해서 여행도 가보고 그랬거든. 일차원적이긴 하지만 나름의 노력을 한 뒤로 처음 맞이한 월요일이라서 오늘 과연 글이 써질까 내심 기대가 되더라고.



나는 촌철살인을 날리는 작가도 좋아하고, 심금을 울리는 작가도 좋아해. 내가 요즘 닮아가고 싶은 작가는 인간의 애달픔을 담담하게 알려주는 힘을 가지고 있던데. 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내 글은 어떤 느낌을 줄까 생각해보기도 해. 내가 생각했을 때 내 글은 아직 부족한데 뭐랄까, 구름처럼 두리뭉실하니 형태가 없는 거 같거든. 그래도 그 상태로 자연스러운 글을 쓰면 또 좋겠다고 생각했어. 서툰 대로 느낌이 있는 그림처럼.








지하철에서 한참을 소설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마도 구름 같은 글이 써지지 않았던 이유는 지하철을 기다릴 수 없는 내 여유의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글을 쓸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지하철에 뛰어드는 나를 보니, 구름 같은 글이 나올 리가 없겠더라고. 글을 쓰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중요하잖아. 지하철을 놓치고 어떤 사색이 들 수도 있는 건데, 그 시간을 없앤 거니까. 그치.



요즘 내 하루 일과는 이래.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기. 8시쯤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10분 전 집을 나서기. 적어도 새벽 1시 전에 잠들어야 내일이 힘들지 않으니까 글의 끝을 포기하고 그냥 자기. 그렇게 삶은 쳇바퀴 굴러가는 것처럼 살아야 그나마 중간은 갈 수 있다고 나를 속이고 있어. 노동은 너에게 급여라는 보상을 매달 제공하지 않냐고, 그러니까 공장처럼 내 시간을 제어해도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막 가끔은, 아니, 종종 그런 사멸적인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어. 그냥 편하게 살자.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까 좀 더 누워있자. 막상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은 나에게 현실에 보탬이 되는 무엇을 주긴 줄 수 있을까. 막 그렇게 합리화하다가도 말이지, 지하철에서 잠시 책을 덮고 메모장에 이런 걸 쓰고 있는 나를 또 발견하는 거야, 나는.



1.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 잊지 말기

2. 진짜 하고 싶은 거 계속 하기

3. 소중한 건 여전히 소중히 여기기



비록 나 자신이 푹 삶은 소세지 같이 느껴지더라도 계속 꿈꿀 거야. 현실에 맞춰서 살아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거 잊지 않기로 해.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지지난주 월요일에 쓴 글인데 2주가 지난 오늘, 수요일에 글을 올립니다. 삶이 각박해도 모두 꿈꾸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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