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방송작가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앞에서 드라마작가가 되는 법을 알려드렸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실제로 드라마 공모전에 참여한 후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리랜서 생존전략 No.19의 내용처럼 저는 구성작가 일로 생계를 이으며 짬짬이 드라마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메이저 방송사의 드라마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응모 분야에 4부작 미니시리즈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저는 소설 형식으로 쓴 완성된 스토리를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에(작년 겨울에는 신춘문예를 도전했었기 때문에 실패한 패잔병으로 한 번..) 4부작 정도는 금방 쓸 수 있을 줄 알고 3주 정도 짬을 내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3주 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매일 12시간에서 14시간씩, 꼬박 써내려간 끝에야 겨우 원고를 발송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16부작, 24부작짜리는 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요? 드라마 볼 때 함부로 빨리감기를 했던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1. 공모전과 시놉시스
제가 이번에 응모한 공모전은 MBC 드라마 극본공모였습니다. 미리 스포일러를 말씀드리자면, 떨어졌습니다. 광탈광탈.
요즘은 방송국마다 차려놓은 교육원 출신들이 대거 배출된 덕분인지, 처음부터 미니 시리즈 정도의 드라마에 투입될 수 있는 작가를 찾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단막극 공모는 KBS가 유일한 것 같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작년에는 JTBC에서도 단막극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SBS나 MBC는 최소단위가 각각 2부작, 4부작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16부작 이상의 드라마 공모를 진행합니다.
https://program.kbs.co.kr/special/drama/contest/pc/detail.html?smenu=12489b
이런 긴 회차의 극본을 어떻게 한 달만에 다 써내나, 하고 겁먹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4부작이든, 16부작이든, 공모전에서는 보통 첫회와 2회 원고만 제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획의도부터 인물소개, 회차별 줄거리까지 포함된 시놉시스라는 것을 함께 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사람 잡는 작업이라는 점입니다.
필력은 본 대본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시놉따윈 대충 보아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시놉을 쓰셨다면 백프로 탈락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모전마다 심사위원 한명이 읽어야 할 대본이 백 개가 넘습니다.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이 대본을 조금 더 볼지 안 볼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놉시스이기 때문에 아무리 본 대본을 잘 썼다고 하도라도 시놉이 형편없다면, 심사하는 사람은 페이지를 넘기지도 않습니다.
보통은 맨 앞에 들어가는 한장짜리 기획의도에서 더 볼지 안 볼지를 결정한다고 하니, 시놉 첫장에서 필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수 개월간 공들여 쓴 극본은 읽히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시놉은 극본보다 더 공을 들여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놉을 먼저 공들여 써 놓은 후에 본대본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2. 회별 줄거리
4부작 정도의 시놉이라면, 회별 줄거리를 쓰는 것이 크게 힘든 일은 아니나, 16부작 정도 되면, 회별 줄거리가 본 대본 하나 쓰는 것보다 더 품이 많이 듭니다. 사실 어떤 스토리로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기승전결에 맞춰 16개로 세부 회차로 쪼개고 또 각 회차마다 역시 기승전결에 맞춰 단계에 맞는 에피소드를 고안하고 적절히 배치해낸다는 게, 사람 한 명의 머리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동집필자나 보조작가를 구해서 팀으로 원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필사적으로 써도 스토리는 산으로 가기 쉽습니다. 네, 여러분들이 욕하는 수많은 드라마들이 다 이렇게 피로 쓰는 과정을 거쳤는데도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등산을 하는 것입니다.
굳이 제가 나서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16회 드라마를 기준으로 한다면, 통상적으로 전체 560 페이지 분량의 대본이 나옵니다. 무려 560페이지란 말입니다! 만일 이것이 책이라면,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 중에서 매 챕터마다 기승전결의 짜임새 안에서 사건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전체 챕터를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꿰어가며 개연성 있게 달려나가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독자들도 그 정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개연성과 짜임성, 그리고 재미와 의미까지 요구합니다. 아무리 내로라하는 프로들이 쓴다해도 뒤로 갈수록 '이게 머여'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잘 안 써진다고, 자꾸 산으로 간다고 좌절하지 마시고 꾸준히 묵묵하게 쓰시길 바랍니다.
3. 내가 써도 저거보단 잘 쓰겠다, 싶다면?
집집마다 축구 전문가가 한 명씩 있듯이, 집집마다 드라마 전문가도 한 명씩 있습니다. 내가 뛰어도 저거보다 잘 뛰겠다! 라는 말 만큼이나 내가 써도 저거보단 잘 쓰겠다! 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꼭 공모전에 도전해 보실 것을 강권드립니다.
또 구성 작가가 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드라마 공모전은 꼭 한 번 도전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번 완결된 극본을 써 본 것과 아닌 것 사이에는 천지만큼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공모전을 해보면,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두뇌 개조가 일어나고, 스토리 텔링이나 구성 능력에 있어서도 굉장한 발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내가 써도 저거보다 잘 쓰겠다!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여 쓴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극본이 공모전에 당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사실, 안 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으로 내는 겁니다, 원래.
4. 건강과 공모전의 반비례관계
드라마 공모전의 최대 단점은, 건강에 유해하다는 겁니다. 고작 3주 동안 극본을 썼을 뿐인데, 전반적으로 건강이 작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이토록 건강에 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프리랜서 작가가 아니라면, 혹은 '내가 써도 저거보단 잘쓰겠다'는 혓바닥 워리어가 아니라면, 공모전 도전을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공모전이 건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에 관해서는 다음 편에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랜서 생존전략 No.18
방송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극본 공모전에는 꼭 도전해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