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글쓰기는 어떻게 건강을 작살내는가

현직 방송작가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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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앞장에서 드라마 극본공모에 관한 실전 꿀팁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보다 더 생생한 실전 후기, 즉 3주간 벼락치기로 극본 공모를 하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 생체 실험 결과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글쓰기는 건강의 얼마나 해로운가' 편입니다. 아마 어디서도 들어보신 적 없는 이야기일 텐데, 주차별로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글쓰기 1주차 : 예술뽕 시기


첫 일주일은 예술가 뽕에 취해 있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에도 극도로 흥분하여 마치 뭔가 위대한 것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이미 대단한 예술가고, 상금을 어디에 쓸지도 다 정해놓은 상태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상상 속 예술가처럼 씁니다. 새벽 2시까지 쓰기도 하고 4시까지 쓰기도 합니다. 깊은 밤이 되어야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취침시간이 들쭉날쭉하니 기상시간도 들쭉날쭉합니다. 7시에 일어날 때도 있고 10시에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생활 리듬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늘 피곤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저는 예술뽕에 취한 상태이기 때문에 초인적인 에너지를 발휘해 마구 써재낄 수 있습니다.그래서 3주 중 가장 많은 글을 씁니다. 문제는 이렇게 쓴 글 대부분이 쓰레기라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영감이고 뮤즈고 다 가짜였습니다. 싹 갈아엎으면서 2주차를 맞이합니다.


2주차 : 루틴 정하기


2주차는 마감에 대한 압박이 슬슬 손에 만져지는 시기입니다. 예술뽕에 취해 이미 한 주를 날렸고, 생체 리듬은 꽤나 망가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2주차부턴 최대한 몸을 아껴쓰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꿉니다.


먼저, 하루 14시간, 15시간식 쓰던 것을 최대 12시간으로 줄입니다. 어차피 하루 15시간 동안 쓴다고 해서 그 시간동안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멍도 때리다가, 인터넷도 검색했다가, 화분도 한 번 들여다봤다가, 그런 시간들을 다 합쳐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15시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서 집중도를 높입니다.


둘째, 7시간의 수면시간은 꼭 확보합니다. 잠을 5시간, 6시간으로 줄여봤자 줄인 시간만큼 책상에 앉아 졸고 있기 때문에 잠은 반드시 7시간 이상 자 줍니다.


셋째, 반드시 하루에 한시간씩은 운동을 합니다. 주말도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있으면 2주차부터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조금 오래 앉은 것 같다 싶으면 한 번씩 허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침 스트레칭 10분, 오후 스트레칭 10분, 저녁 걷기 운동 40분, 이렇게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꼭 운동을 해줬습니다. 단, 조깅한답시고 옷을 갈아입는 등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모든 운동은 집에서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면 사람 꼴을 갖춰야 하는데, 이때쯤이면 이미 사람 몰골이 아니기 때문에 나가기 위한 준비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래서 떡진 머리와 늘어진 런닝,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를 입은 상태로 집안을 뱅글뱅글 40분 동안 걸어다닙니다. 저는 맨발로 방바닥을 밟는 느낌을 좋아해서 그냥 걷지만, 그게 싫으시면 워킹머신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이런저런 노력으로 2주차까지는 아직 몸이 버텨줍니다. 머리가 딸려서 못 쓰는 거지, 몸이 안 따라서 못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의 3주차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3주차 : 마의 구간


자, 이제 누구도 만나지 않고, 누구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매일 같은 자세로 12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게된지 3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감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허리입니다. 이 시기부터는 '허리가 너무 아픈데..' 수준이 아니라(이건 2주차에 경험합니다) 허리의 힘으로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말그대로 불가능하게 됩니다. 두어시간 앉아 있으면 허리가 조금씩 앞으로 굽어지는데, 억지로 피려고 하면 육성으로 악 소리가 나옵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핑 돕니다. 이쯤되면 더 앉아 있다간 하반신 마비가 오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깨 마비도 옵니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루 12시간씩 키보드를 치고 있으면 어깨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조금씩 마비증상이 옵니다. 귀밑 혀뿌리까지 찌릿찌릿하며 목부터 어깨까지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 오는데 굉장히 기분나쁘고 또 공포감이 듭니다.


처음 이 증상이 시작된 것은 먼 옛날 석사 논문을 쓸 때였는데, 병원에 갔더니 회전근개염과 목디스크 초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물리치료도 받았습니다. 이런 증상이 올 때 팔을 계속 쓰면 상태는 더 안좋아집니다. 증상이 시작됐다면 팔을 안 쓰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한 후 다음 한 시간 바짝 쓰는 것이 글 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속도 안 좋아집니다. 배가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3주차부턴 커피도 못 마십니다. 커피 한 모금에 물똥 세 번 수준이니 햇반에 물 말아 먹으면서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커피야 안 마시면 그만이지만, 앉아 있지 못한다는 것은 글쓰기에 치명적입니다. 아직 수정해야 할 게 산더민데, 몸만 작살나고 극본은 제출도 못하는 건가? 항아리 속 코브라가 주인의 피리소리를 들은 것처럼 깊은 불안감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해달요법입니다!!

침대에 누워 배 위에 베드테이블을 펼치고 양팔 밑에 쿠션을 받쳐서 마치 해달이 되었다고 상상하면서 키보드를 치시면 됩니다.


다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잠을 이기기 힘들다는 겁니다. 주말도 없이 계속 머리를 풀가동을 시키면, 3주차부턴 7시간 취침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계속 잠이 쏟아집니다. 책상에서 쓸 땐 의자에서 2, 30분 조는 것으로 큰 잠을 물리칠 수 있었는데, 누워서 쓰면 방법이 없습니다. 자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급한 상태에서 키보드를 치다가 잠이 들면 아주 생생한 꿈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거대한 지네와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변발 머리를 한 할머니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기도 합니다. 마지막 날엔 베란다 문턱에서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저를 빼꼼히 쳐다보는 꿈을 꿨습니다. '어머, 어디서 왔니?' 하고 육성으로 말하다가 깼습니다. 정말 귀여운 강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시보다 더 생생한 꿈을 꾸면, 일어나서도 피로가 가시질 않습니다. 체감상 더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궁여지책으로라도 누워 쓰면서 필사적으로 허리 힘을 비축한 후, 마감을 5시간 정도 남겨놓고 마침내 다시 책상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힘으로 탈고를 합니다. 마침내 마감시간을 10분 남겨놓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되지도 않을 걸 뭘 이렇게까지?!


그러나 원래 다들 어이없다, 하면서 씁니다. 신춘문예도 그렇고, 극본 공모도 그렇고, 모든 글쓰기 대회가 다 그렇습니다. 가성비로 따지면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법입니다. 또한 이렇게까지 해야 완성된 글을 보낼 수 있습니다. 보내본 사람이 되는 것은 꽤나 성취감이 큰 일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업으로 사실 분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공모전 참여는 권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무척 해롭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징그럽고 소름끼치는 글쓰기 과정인데, 방송작가로 일하면 이렇게 신체를 학대하는 날들이 일상적으로 펼쳐집니다. 라디오 작가를 할 때는 일일 방송 원고를 혼자 다 쓰느라 한 달 넘게 저런 식으로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작가 중에 이런저런 지병 하나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가장 많고, 말은 안하지만 치질 환자도 많을 거라 확신합니다. 계속 의자에 붙어앉아 있는데, 똥꼬가 건강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거금을 주고 스탠딩 데스크를..


결론은, 글쓰기로 먹고 사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느리고 즐거운 글쓰기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프리랜서 생존전략 No.21

공모전은 닥쳐서 준비하지 말 것.
원고는 평소에 미리 써 두었다가
공모 기간엔 수정을 한다고 생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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