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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Sep 04. 2023

<불편한 편의점>과 따뜻하지 않은 인간

[노파의 글쓰기] 서평 쓰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2020년 이후 100만부 이상 팔린 한국 소설이 딱 3종입니다.


<불편한 편의점1,2> <달러구트 꿈백화점1,2>, 그리고 <아몬드>. 만화도 포함하면 <슬램덩크>까지 들어가겠으나 이것은 스무 권짜리이므로 공정하지 않으니 아웃.


그래서 세 책을 쭉 읽어보았습니다. 어떤 것은 눈물 콧물 대방출하며 읽었고, 어떤 것은 시종일관 허허허 웃으며 읽었고, 어떤 것은 타인의 취향이어서 읽다가 덮고 말았습니다. 백만 명의 취향에 들어가지 않다니 참 아쉬운 노릇입니다.


그렇게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을 읽은 결론은, 사람들이 따뜻한 걸 좋아한다는 겁니다. 대가 없이 선의로 도와주고, 무뚝뚝한데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고, 그러나 부당함에 나서서 맞서주는 사람. 그런 따뜻하고 의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런 경향을 살피면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가난은 정신병이다' 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광고 문구로 나오고, 모두가 나는 그런 정신병자가 아니기를, 하루빨리 저 파이어족 무리에 속할 수 있기를 꿈꾸며 아등바등 살았더니 이젠 지친 것 같습니다.


죄인, 삼가 인사올립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인간관계에 지치고, 여전히 많은 것이 결핍된 일상에 지치고, 더 큰 부를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삶에 지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동산 비법도, 재테크 지침도 알려주지 않는 이런 따뜻한 이야기, 꿈 이야기를 찾아 읽는 것일 겁니다.

중요한 발견입니다. 저도 이런 따뜻한 글을 써야겠습니다.


그러나 천성이 화가 많고 냉소적인 저는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 씨를 보는 내내 이것은 현실이 아니지, 현실에는 이런 노숙자도, 이런 사장님도 존재하지 않지, 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 작가 지망생이 독고씨를 만나서 쓴 시나리오로 다시 일어서게 됐을 때는 21세기판 전래동화를 보는 것 같군, 이라며 또 냉소했습니다. 이러니 제가 따뜻한 이야기로 밀리언셀러가 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엊그제는 밤 열 시쯤에 비가 와서 나일론 장바구니를 뒤집어쓰고 집에 가는데, 여덟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정말 관심이 없으나 아이는 다릅니다. 아이는 아이니까요. 건들건들 다가가서 '애기 왜 울어?' 하고 물어봤고, 아이는 제 작은 몸집을 보고 안심이 됐는지 서러운 얘기들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아니, 엄마가, 나한테 막 뭐라고 했단 말이야.. 엉엉..

엄마 어딨는데?


아이는 멀리, 사거리 건너편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한 여성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저는 이 비 오는 밤에, 엉엉 우는 아이를 혼자 두고 길을 건너가 버린 엄마의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았으나, 애를 키워본 적도 없는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저 달래는 수밖에요.


신호 바뀌면 바로 가서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그래.

아니 엄마가 먼저 나한테 뭐라고 했단 말이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어린이 혼자 밤에 이런 데서 울고 있는 거 아니야.


나름 달랜다고 달랜 건데, 아이는 말귀가 막힌 꼰대라고 느꼈는지 더는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냅다 엄마에게 튀어갔습니다. 자신을 달래주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작은 몸집의 냉혈한보다 제 엄마가 백배는 더 따뜻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얼마 전에 친한 동생이 다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장난을 치다 냄비 받침을 부러뜨렸고, 저와 동생의 눈치를 보며 냄비 받침을 붙여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이제 못 써. 그냥 받아들여.

왜?

어떤 건 한 번 망가트리면 돌이킬 수 없어.

왜?

니가 부러뜨렸으니깐.


나름 따뜻하게 얘기한다고 했는데, 곱씹을수록 저의 따뜻함의 한계가 얼마나 밑바닥에 있는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제 저희 집에 두 번 다시 안 놀러 올 것입니다.


저도 따뜻한 게 좋습니다. 따뜻한 글을 써서 다정한 댓글을 받는 것은 저의 삭막한 일상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 <불편한 편의점> 류의 따뜻함은 제게 없는 듯합니다. 그저 나름의 방식으로, 나름의 따뜻함을 전달하며.. 그런데 문득 제 글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는 하는지 궁금합니다.

따뜻하십니까?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00438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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