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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Oct 03. 2023

호메로스가 뭐예요?

[노파의 글쓰기] 오뒷세이아 북토크에서)





어제는 한양문고에서 행사가 있어서 안내 데스크를 맡았습니다. 행사는 김기영 교수님의 <오뒷세이아> 북토크였습니다.




데스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을 멀뚱멀뚱보고 있는데 한 중년의 남성분이 다가왔습니다. 진열된 책을 집어 들춰보더니 그가 물었습니다.

“오뒷세이아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저는 당황하여 띄엄띄엄 말했습니다.

“오뒷세이아.. 일리아드.. 호메로스.. 그런 거요….”


그러자 남성분이 다시 물었습니다.

“호메로스가 뭔데요?”


호메로스가 누구냐도 아니고 뭐냐는 질문을 들은 순간,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불현듯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호메로스가 뭔지 모른다… 그래서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성분은 책장을 몇 장 더 넘겼고, 이내, 아, 작가네! 했습니다. 공감을 바라며 기쁜 얼굴로 저를 쳐다봤으나 저는 그저 그의 왼쪽 귀 너머만 바라보았습니다. 어쩐지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없자 남자는 책을 놓고 총총 사라졌습니다.


연필을 네 자루나 들고 열심히 질문하시던 선생님.. 멋집니다!

남자가 떠나자 이번엔 연세 지긋한 여성분이 오셨습니다. 그는 책을 들춰보며 호메로스, 호메로스하고 나직이 읊조리더니 제게 물었습니다.

“이 북토크, 작가가 직접 오는 거예요?”


당연히 번역가가 오냐는 질문이었을 텐데, 저는 의아하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작가는 옛날에 죽었는데요?”


아마도 저는 그때 호메로스 주술에 걸려 있었나 봅니다. 그는 그건 자기도 안다며 잔뜩 신경질을 부리고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호메로스란 무엇인가.

마침 어제 강의에서 중요하게 다룬 내용도 우티스(Ουτις), 즉 ‘아무도 아닌’이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아무도 아닙니다.

저도 아무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니지 않은 여러분은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아이고.. 힘들어서 어쩝니까..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2553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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