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PA Oct 21. 2023

지금 쓸쓸하십니까?

[노파의 글쓰기]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제 일상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쓸쓸함입니다. 외로움이란 단어도 있고 고독이란 말도 있으나 미세한 차이로, 쓸쓸함이 더 정확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나는 쓸쓸합니다.


모든 애착형 관계로부터 홀로서기를 결심한 이후 쓸쓸함이 성실한 세금 징수원처럼 꼬박꼬박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똑똑, 아직 오늘치 애정 지불 안 하셨어요~ 아니, 이 꼴 저 꼴 안 보고 홀가분하게 살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공짠 줄 아셨어?


제기랄.

저는 쓸쓸함이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 줄 알기에 하릴없이 텅 빈 마음을 붙들고 사람 많은 곳을 찾아 나섭니다. 


어떤 날은 역 주변으로 산책을 가고 어떤 날은 아침부터 카페를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꽤 자주, 베란다로 나갑니다. 

지금 베란다에는 때를 모르고 마구마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토마토 나무가 있습니다. 개놈 새끼가 여름내 뭘 하다가 이제야.. 저는 툴툴거리며 잎을 솎아주고 수분을 시켜줍니다. 


토마토는 아마도 가야 할 때가 임박했음을 알고 마지막 발광을 하는 것일 겁니다. 


저도 지난 두 달간 마지막 발광을 하느라 물구나무를 섰습니다. 갑자기 모든 걸 다 뒤집어버리고 싶은데,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으니 저를 뒤집는 겁니다. 


어쩐지 토마토 나무 옆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싶어졌습니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마음이 헛헛하여 견딜 수 없을 때마다 하루 치의 인연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몸으로 맺는 관계는 마음을 더 텅 비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서걱서걱함을 어찌 견디려고..


뭐라고 얘기를 해줘야 했으나 저는 말을 잘 못 합니다. 글은 그럭저럭 쓰지만 말은 형편없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똥은 먹으면 안 되지.” 

저는 그날 제 말의 천박함에 절망하며 앞으론 조언 따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쓸쓸함을 대가로 지불하고, 함께 사는 사람은 인내를 대가로 지불합니다. 그렇게 대가를 지불한 덕에 저는 쓰는 시간을 얻었고 여러분은 정서적 유대를 얻었을 겁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없습니다. 아마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쓸쓸함도, 인내심도 지불하지 않고 삶의 즐거움만 얻으려다가 거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역시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토마토 나무에 특식으로 비료를 넉넉히 줍니다. 내년에는 블루베리를 다시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올해는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나저나 우리집 토마토는 왜 넝쿨처럼 자라는 걸까요?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41381825

#노파의글쓰기수업 #노파의글쓰기 #글쓰기 #글잘쓰는법 #에세이 #감성글 #북스타그램 #쓸쓸함 #베란다텃밭 #토마토키우기 #대가     




매거진의 이전글 <플라워 킬링 문> 영화평. 마틴 스코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