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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Dec 11. 2023

가내수공업자의 베란다 텃밭

[노파의 글쓰기] 겨울 베란다 텃밭 관리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드디어 베란다 월동 준비를 끝냈습니다. 


환경 파괴로 겨울 추위가 저의 게으름을 기다려준 덕에 12월 하고도 열흘이나 지난 어제, 드디어 모든 분갈이와 비닐하우스 작업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여름 내 식물 친구들이 진딧물과 응애에 뜯어먹히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원인 불상의 두드러기로 두 달 동안 피부과를 들락거리면서, 토마토만 익으면 베란다 식물을 다 뽑아서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비극이 몸 따로 마음따로에서 비롯되듯이, 저 역시 마음은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손은 바질 씨앗을 스무개 쯤 심고 있었고, 진딧물 지옥을 경험했던 파프리카 역시 씨앗을 세 개나 심었습니다. 


광기의 바질 바질


그 작은 녀석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나버린 바람에, 다음주부터 저것들이 오들오들 떨 것을 생각하니, 아이구 내새끼, 하는 마음이 절로 들어 이제야 게으른 몸뚱이를 일으켜 겨울 텃밭 정비 사업에 나선 것입니다. 



1. 식물등

겨울에 베란다 텃밭을 할 때는 식물등을 꼭 달아주는 게 좋습니다. 겨울은 해가 짧아서 인위적으로 빛을 쫴주는 게 첫 번째 목적이긴 한데, 부수적으로 온도를 높이는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전구에서 나오는 열기가 상당하여 비닐하우스를 덮고 전구를 켜주면 안에서 훈기가 돕니다. 


식물등은 ‘식물등 LED’라고 이름 붙여진 비싼 물건들을 사지 마시고, 다이소에서 주황색 전구랑 흰색 전구 하나씩 사서 달아주면 됩니다.


식물등을 설치하면 매일 아침이 크리스마스 같습니다


식물등의 원리라는 것이, 햇빛에서 나오는 여러 빛의 파장을 실내에서 기르는 식물에도 다양하게 쫴 주는 것인데, 단순히 색깔 다른 전구를 동시에 달아주는 걸로 해결됩니다.  (빛의 파장과 식물 성장 속도 관련 논문도 찾아서 읽어봤으니 믿으셔도 됩니다)


‘식물등’ 제품이라고 해서 다양한 파장이 나오는 특별한 전구를 개발한 게 아니라, 파장이 다른 두 색깔의 전구를 이어붙여준 겁니다. 전구 하나 짜리라면 한 개의 파장 밖에 갖고 있지 않으니 더더욱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식물등의 효과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내려면 빨간 전구와 파란 전구를 동시에 쫴주는 건데, 그럼 베란다가 완전히 정육점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주백색(흰색)과 전구색(노란색)으로 해주는 겁니다. 작년 겨우내 사용했는데, 전구를 켜주면 확실히 식물이 잘 자랍니다. 


아, 다들 전구다는 법은 아시지요?

전선과 플러그와 스위치, 그리고 소켓을 사서 색깔 맞춰서 전선을 연결해주면 됩니다. 

전구 4개 연결하고 스위치 딱 올렸을 때 불이 따라락 켜지면, 희열이 엄청납니다. 


그러나 중간에 선을 잘못 연결하면 콘센트에서 불꽃이 튀면서 전구가 터지므로 잘 연결해야 합니다. 

저 또한 전구 두 개를 그렇게 해먹고 말았습니다. 데헷.


하지만 고작 전구 4개 정도의 전력인지라, 아파트 전체 전력이 나갈 일도 없고 죽지도 않았으니, 안심하시고 다시 전구를 사서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2. 베란다에 심으면 좋은 식물 

바질이 무조건 왕관 씁니다.

바질은 정말 잘 자라고, 벌레도 잘 안 꼬이고, 거의 끼니마다 뜯어다가 샐러드에도 넣고 파스타에도 넣고, 리조또, 굴랴쉬에도 넣어먹습니다. 

그는 가내수공업 생활에 평생 동반자 같은 존재입니다.  


그다음으로, 겨울이니 쑥갓을 추천합니다. 

쑥갓 역시, 겨울철 모든 국에 넣어먹을 수 있습니다. 우동, 어묵탕, 라면 등등. 


무엇보다 쑥갓은 꽃이 정말 예쁩니다. 작년에 올린 게시물에 사진이 있는데, 그냥 이번에 새것으로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달만 시간을 주십쇼. 


고추는 뺐습니다. 

무슨 고추 성애자도 아니고, 작년에 8그루나 심어서 1년 내내 고추를 한 번도 안 사먹었긴 했는데, 진딧물과 응애 같은 벌레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벌레 꼬이는 고추 같은 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므로 패스. 


파프리카도 진딧물이 잘 생기긴 하는데, 다 없애고 한 줄기만 남겨뒀더니 거기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정말 징글징글한 생명력입니다. 


그렇게 되면 징그러운 내 새끼, 하면서 또 거둬줄 수밖에 없습니다. 징그럽다면서 스스로 씨앗을 3개나 심어 그 중 하나가 싹이 텄습니다. 그래서 징그러운 내 새끼가 두 개가 됐습니다. 


그 외에도 로메인과 루꼴라를 심었습니다. 

그동안 양배추만 먹었더니 이제 나도 남들처럼 연한 풀 좀 먹어보자, 하는 마음이 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브로콜리도 세 그루 심었습니다. 

얘네도 꽃이 예쁜데, 꽃을 봤다는 것은 여러분이 수확 시기를 놓쳤다는 뜻입니다. 한 번 꽃이 피면 그때부터 브로컬리는 다시는 식용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 베란다에서 관상용 꽃은 밥값 못하는 식충이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올겨울에 제 베란다에서는 바질 일곱 그루와 파프리카 두 그루, 브로콜리 세 그루, 그리고 로메인과 쑥갓과 루꼴라가 자랄 것입니다. 


토마토 네 그루는 마지막 열매만 익으면 다 정리할 계획이고, 금천구에서부터 저와 동고동락해온 커피나무와 레몬나무도 여전히 의연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1년의 실험 결과, 고구마와 감자는 사 먹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구마 니는 빠큐 먹어. 


3. 살충제

식용작물 키우게 되면 여러분의 집에는 ‘대유’에서 나온 각종 병들이 점점 늘어날 겁니다. 

뿌리혹파리 정도는 그냥 같이 산다고 생각하시고, 정 싫으면 ‘비오킬’을 한 번씩 뿌려주시고, 진딧물이나 응애는 ‘아인산’을 물에 희석해 뿌려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한여름에는 이틀에 한 번씩 뿌려도 매일 패배를 경험하실 겁니다.


식물은 강한데, 벌레는 더 강합니다. 

그래도 농약까지는 가지 맙시다. 집에서 농약까지 뿌리고 그러는 거 썩 좋지 않습니다. 


만일 살생의 업보가 걱정된다면 저처럼 식충식물을 키워주시면 이게 아주 효잡니다. 

확실히 고기 먹는 애들이 빛깔이 좋습니다. 


이렇게 저는 올겨울도 굶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는 노동을 통해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쪽을 추천드리겠습니다.

반백수니까 광기로 하는 거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면 유지하기 꽤 버거울 겁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28761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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