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글쓰기] 최진영 소설이 좋은 이유
혼자 살다 보면,
혼자 조용히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거나 읽고 싶을 뿐인데, 보름에 한 번 정도는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게 된다. 공사를 한다고 서명을 해달라든가, 아랫집에서 누수 때문에 올라온다든가 하는.
그 방문은 밤중에 정적을 깨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이뤄지거나 어느 때는 열린 문틈으로 어른거리는 남성들의 실루엣과 함께 이뤄진다. 내 덩치의 두 배는 돼 보이는 세 명의 낯선 남자들. 그럴 때면 함께 사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다 나처럼 정해진 소득활동 없이 부표처럼 떠다니는 인생이라면, 어느 시점에선 단순히 덜 먹고 아껴 쓰는 것만으로 생활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도시에서 살면 그렇다. 결국엔 나가서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도 함께 사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젓는다.
상대방이 내게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면 나도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 감사는 주로 식사와 청소와 빨래와 상대의 양친에게 정서적 케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역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식의 노동은 퇴근이 없기에 읽고 쓸 시간은 더더욱 확보되기 어렵다. 나는 점점 지친다. 화가 나기 시작한다.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더 희생한다며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는다. 파국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로 살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부럽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여자들이. 그리 많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너끈하게 건사하는 여자들이. 차도 있고 집도 있고 가게도 있는 어른스러운 여자들이.
언젠가 인형 공방을 하는 여자를 알게 됐다. 여자는 하루에 고작 서너 시간 정도 공방에 나와 일을 하는데도 차가 있고 집도 있었다. 나는 여자가 너무나 부러워져서 그런 마음을 여자의 친구에게 전했다.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우리는 남편이 있잖아.”
여자의 친구와 나는 당시 관계의 초입에 있었기에 우린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의 친구는 내게도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생활은 무려 9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여자의 친구에게 나의 이혼 사실을 밝히며 말했다.
“선생님, 저도 남편이 있는 생활을 알아요. 그래서 두 분이 이 생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걸 내주고 있을지도 잘 알아요.”
역시 생활의 안정과 쓰는 여유는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거로군, 라고 생각할 때 여자의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내줘야 했던 것들과 지금도 내주고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진영 소설에는,
생활의 안정을 버리고 삶의 여유를 확보한 사람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폐가에서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사는 사람. 재개발로 허물어진 집에 누워 고양이를 보고 나비를 보는 사람. 그래서 최진영의 소설을 좋아한다.
<단 한 사람>에는 목공소 일을 하면서 나무를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살리는 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죽음의 우연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역시 좋았다. 이런 삶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 좋았다. 최진영 글의 모든 것이 좋다.
<0원으로 사는 삶>도 좋을 것 같다.
장교 출신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인데, 노동하지 않는 삶에 대한 비밀을 말해줄 것만 같다. 괜찮으면 따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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