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 도 본 날
친해지고 싶은 언니와 산책을 갔다. 잘 보이고 싶어서 아침부터 해남 고구마를 구워서 싸 가지고 갔다.
새도 많고 그늘도 좋은 아름다운 산책로였다. 소박한 벤치에 앉으니 비둘기들이 날아왔다. 수컷 비둘기가 몸을 잔뜩 부풀려 암컷에게 구애했다. 그러나 암컷은 도망가기 바빴다.
집도 없이 몸만 들이 되니 안 되는 거라고, 그의 실패의 이유를 말해주며 고구마를 먹었다. 팔뚝에 뭐가 떨어졌다. 똥이었다. 다행히 작은 새의 똥이었지만 휴지가 없었다. 곤란해하는 내게 언니가 고구마 껍질을 건넸다. 쓱쓱 닦았다.
다시 비둘기 구애쇼를 보며 수다를 떠는데 이번엔 오른쪽 팔뚝에 뭐가 떨어졌다. 또 똥이었다. 남은 고구마 껍질을 다 썼다. 비둘기 친군가? 내가 지 친구 욕했다고 이러는 건가?
양팔을 똥으로 칠한 기분이 영 별로여서 일어나려는데 악랄한 녀석이 한 번 더 쌌다. 잘 보이고 싶은 언니 앞에서 새똥을 세 번이나 맞았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오직 내게만 쌌다.
비누로 박박 씻으며 미친 새라고 염불을 왰다. 대체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고구마 껍질로 똥칠을 하게 만드나. 그래도 머리에 안 싸준 건 고맙다.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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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족발을 사줬다. 방금 전 수치와 모욕을 잊게 하는 맛이었다.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똥 세 번 맞고 고기 한 접시를 얻었으니 나쁘지 않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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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보니 양산에도 똥이 묻어 있었다. 내가 양산 펼치고 떠나는 순간에도 쌌다는 뜻이다. 와 진짜 미친 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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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며 정보라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를 읽었다. 첫 단편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너의 유토피아’와 ‘아주 보통의 결혼’은 아주 재밌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나. 보라님 앞에서 내 상상력은 너무 평범하게 느껴진다. 아주 기이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굉장해!
...
태극당에서 빵도 좀 먹었다. 살 찌우기 딱 좋은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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