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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진지하게 싸웠다, 고구마 때문에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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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청에서 전화가 왔다. 버스 터미널에서 산 고구마는 경비 지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남군의 지원을 받아 간 경비 정산이 이제야 끝난 모양이었다. 왜 안 되냐고 물었더니 판매자가 사업자 등록증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산 건데, 파는 사람이 등록증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어쩔 수 없단다. 알겠다고 했다. 얼마 하지도 않는 돈인데 따지고 들기 귀찮았다.


다시 책을 읽으려는데 자꾸 생각들이 떠올랐다.

요즘 왜 자꾸 피해? 왜 안 싸워? 불법적으로 장사한 건 그쪽인데, 내가 지원을 못 받는 건 이상한 거잖아. 고구마 사면서 사업자 등록증 확인 안 한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니잖아. 요즘 왜 다 얼렁뚱땅 넘어가? 왜 그래 요즘?

니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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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화하여 고구마에 관한 긴 항변을 했다. 읍내 버스 터미널에서 직원이 떡하니 고구마를 파는데, 거기서 사업자 등록증을 확인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게 불법 장사면 단속 안 한 행정 기관의 문제지, 그저 고구마를 샀을 뿐인 내가 왜 패널티를 먹어냐 하냐. 근데 그 단속 소관은 군청에 있는 거 아니냐?


말하면서 두 가지 기분이 들었다. 하나는, 고작 고구마에 이런 열변을 토하다니 진짜 추접스럽구나. 다른 하나는, 전부 고발하고 민원을 넣어버리겠다. 불법은 근절하고 책임 면피 태도에는 책임을 물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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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직원은 나의 항변을 진지하게 받아줬고, 직접 터미널에 전화해 고구마 판매는 금호고속에서 대리영업을 한다는 것을 알아낸 후 다음 주까지 판매자의 사업자 등록증을 받기로 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판매자가 일부러 현금영수증을 안 줬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고구마 경비를 보전받았고, 지방은 역시 공무원이 왕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전사의 태도로 살기로 했다. 더는 귀찮다고 얼렁뚱땅 지나치지 말아야지. 태도가 단단하지 못하니까 자꾸 물컹하고 되다만 것들만 손에 쥐는 것 같다.


마흔엔 단단한 것들만 쥐어야지. 해남 고구마 같은 것들만. 물컹하고 삿된 것들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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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해남에서 한강 작가의 책은 주로 영수증 관리 용도로 쓰였다. 여러모로 훌륭한 책이다.


그리고 해남에서 딱 한 군데를 못 갔다. 여행을 완결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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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90271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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