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과일: 큰 머리 귤사람 5

<<귤의 출신은 귀족>>

by 조금 다른 별

겨울이면

우리 집에는 귤 박스가 도착한다.
제주도에서 귤 과수원을 하는
지인이 챙겨주신 마음이다.

그러면 겨우내
우리 집 곳곳엔
먹고 남겨둔 귤껍질이 말라비틀어진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게 된다.

오늘은 귤사람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은 쉽게 구하고
우리가 많이 먹는 과일이지만
귤은 태생이 귀족 출신이다.

우리나라 귤은
중국을 통해 처음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 오랜 기록은
백제 문주왕 2년에 탐라에서
지역 특산물로 바쳤다는 기록이다.

조선시대에는
귤에 대한 기록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조선 시대까지도 귤은 진상품이었고,
일반 백성은 거의 접하지 못한 과일이었다.

세종대왕은 귤을 좋아해서
왕실 전용 온실에서도 귤나무를 길렀다고 한다.
또, 총애하는 후궁에게
직접 귤을 준 이야기도 유명하다.
명종 때에는 밀감 40개를
신하에게 하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듯 과거에는
귤이 너무나 귀한 과일이었기에
임금도 아껴서 먹었던 과실이었다

1960대까지만 해도
감귤이 너무 비싸서 2그루만 가지고 있어도
자녀 대학 학비를 낼 수 있었다고 해서
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귤은 귀한 과일이었다.
조선 후기

제주 귤림(橘林)을
국가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했다고 한다.

그 후 현대까지 개량과 관리를 한 결과,
대량 생산보급되며
겨울 과일은 귤이라는 부동의 공식이 되었다.

즉, 지금의 귤은
기후·지리·국가 관리노력이 함께 만든 결과다.
우연히 대중에게
친근한 과일이 된 것이 아니라,
품종을 관리되고 선택해서
우리에게 사랑받는 과일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가족들이 모여 앉은자리에
이야깃거리와 함께 빠지지 않는 귤은
아주 오래 귀하게 다뤄졌던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귀족 출신 귤은
위로를 담은 대중의 과일이 되었다.


**오늘의 기록: 큰 머리 귤사람과 ‘대중 과일이 된 귀족 과일’에 대해 생각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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