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간지럼을 태웠던, 라운딩텔링

<노필씨의 수필 1> 두 번의 겨울비, 두 번의 취소

by 노필씨


"출발했냐? 거기도 비 오냐?"

새벽 4시였다. 거리가 멀어 접근이 어려운 거제도 모임이 두 번 있었다. 12월과 2월의 겨울이었다. 일곱 명의 친구들과의 골프모임, 용인과 서울에서 추운 겨울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어둠도 새벽추위에 더 짙어져 위험한 여정이었다.


"그칠 비 같은데, 괜찮아! 거제도는 따뜻해."

한 번은 출발부터 겨울비가 부스스 왔고, 한 번은 도착할 즈음에 봄비처럼 심술을 부리듯 왔다. 단톡방은 비에 대한 해석과 골프에 대한 설렘이 흔들리면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오래전부터 약속을 했고 운동을 좋아했기에 강행하기로 했다. 비도 추억이고, 물에 젖은 장갑도 우정이고 거침없는 마인드들이었다. 들여다보니 만남이 그리웠고, 주위에 담백하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단 클럽하우스 가서 비 맞고라도 치겠다고 사정해 보자"

처음은 클럽하우스에 도착해서 휴장소식을, 한 번은 골프장 근처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다가 문자로 휴장소식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골프장이었고, 비로 인해 두 번이나 일방적으로 휴장통보를 받은 것이다. 코스와 안전관리 차원이라는 도도하고 엄격한 잣대였지만, 추운 겨울 새벽을 5시간이나 달려간 결과에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동백꽃이 이쁘네, 앞으로 여기서 골프 칠일 없겠다!"

살아생전 한 번은 치고 싶은 오기도 품었지만, 이동거리와 예약 등 현실적인 문제로 신세타령은 늘고 빗방울이 더 커져갔다. 하필이면 회원권을 가진 회사에 몸담던 친구가 이번에 그만두게 되었다. 예약과 저렴한 가격이 동시에 무너진 것이다. 대낮부터 조개구이와 찬 소주가 큰 위로가 되었다. 비에 스며든 동백꽃도 눈길을 끌었다.


"야! 모여, 사진이나 찍자. 사진이 추억이야!"

익어가는 중년의 남자들이 풍경 좋은 커피숍에 들어갔다. 살아가고 살아온 이야기들에 바빴다. 하지만 마음은 살아갈 이야기에 더 어지러울 수밖에. 나이가 들수록 마음대로 안 되는 것에 슬퍼할 틈이 없었다. 되는 것만 해도 부족한 시간 같았다. 계획도, 추억도 금방 지나가고 어제일처럼 느낌이 사라진다. 몇 장 찍은 사진만이 기억을 돋울 뿐이다. 그래 사진이 추억이다.


"칠전이냐? 칠천이냐?"

그 골프장 근처에는 아주 가까이 봉하마을이 위치해 있었다. 비 오는 두 번의 동행에서 한 번을 들려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와도 느낌은 비슷했다. 또 한 번은 임진왜란 수군의 첫 패전역사를 가진 칠천도를 방문해서 칠천량해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픈 역사가 스민 그 바다를 보고 지어진 골프장은 매우 아름다웠다.


우리들은 도처에 널린 의미들에 창문을 두드리듯 관심을 갖고 서로 위안을 삼았다. 버디욕심만큼이나 우리들만의 스토리텔링이자 라운딩텔링이었다고, 오래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유행어가 동행했다.


"다음에도 비 오는 거 아냐? ㅎㅎ"


<노필씨의 Why> 우연한 기회가 지혜를 주기도 한다. 탓하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된다. 골프가 준 추억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또 앞두고 있다. 그래도 라운딩 때는 비가 안 오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