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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을 타는 나뭇잎 Dec 07. 2024

마음의 빚을 갖지 말라니..

'마리아'라고 쓰고 '천사'라고 읽는다

눈을 뜨면 사건 사고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나쁜 일만도 아니었다. 당시엔 절박하고 고생스러웠지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바가  있었고, 좋은 인연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마리아 언니도 그중 한 명이다. 그날도 여지없이 사고는 이어졌다. 아침을 먹고 평온하게 커피를 마시다 그만 '툭' 하고 손등을 스친 커피잔이 노트북에 쏟아졌다.


전자기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설마.. 삼성인데.. 다시 켜면 괜찮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전원을 끄고 한참을 말린 뒤 다시 켜봤지만 새카만 화면뿐 노트북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영어가 안되니 모든 것을 메일로 처리했던지라 노트북은 필수였다. 무엇보다 미국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류가 전부 그 안에 있었으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뒤로 나는 모든 자료를 하드디스크에 따로 저장해 두는 습관이 생겼다)


다급하니 영어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삼성 AS 센터를 검색해 찾아갔다. 허망하게도 여기선 고칠 수가 없고 텍사스까지 보내야 해서 2-3주가 걸린다고 했다. 난감했다.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와이프가 커피를 쏟았구나." 다정한 한마디에 또 울컥 눈물이 터졌다. 급한 대로 현지에서 저렴한 데스크 탑을 사서 쓰고 노트북은 남편이 한국에서 고쳐서 보내주기로 했다.


우편으로 보내고 받고 하면 그 또한 최소 2,3주가 걸리는데, 컴퓨터를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이며 세팅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산 넘어 산이었다. 절박했다. 문득, 동네 도서관 게시판에서 봤던 한국인 커뮤니티가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입해서 SOS를 요청했다. 노트북이 고장 났는데 A/S를 잘하거나, 데스크톱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정보를 줄 수 있느냐고 짧게 질문하고 제발 누구라도 답을 주길 기다렸다.


드. 디. 어.

한 분이 댓글을 달았다.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같은데 자신은 IT 분야에서 일하고, 아들도 컴퓨터 공학과여서 간단한 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누군지 알고 덜컥 내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노트북을 맡긴단 말인가. 두려웠다. 주저했더니 집 주소를 불러주며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


정말 가도 되는 거야? 무서웠지만 절박함이 두려움을 이겼다.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니 세상 착한 얼굴로 선하게 웃고 있는 중년 여성이 나를 반겼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내 노트북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들이 오면 저녁에 함께 고쳐보겠노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다정하고 착해 보였지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 알고 있을 뿐인데 믿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노트북은 100% 사망했고, 주요 자료는 한국에 갖고 가서 복구하는 게 낫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낙심했다. 부주의한 나를 탓해 무엇하랴. 근처 데스크톱 살 곳을 물었더니 마침 시간이 되니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문가답게 데스크톱의 성능을 툭 툭 툭 비교해 가면서 무척 저렴한 가격에 가뿐하게 사더니, 우리 집까지 함께 와서 세팅을 다 해주셨다. 한 번 봤을 뿐인데, 뭘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친절하다니. 과분한 친절에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내게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나한테 마음의 빚을 갖지 말아요. 나도 처음 미국 왔을 때 이렇게 사람들이 다 도와줬어요.

그 마음은 잘 갖고 있다가 나중에 현주씨 같은 사람 만나면 그때 도와주면 돼요."


가슴이 짜르르했다. 나는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않았지만 성당 '레지오' 활동을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그 분이 그 어떤 성인보다 따뜻하고 고마웠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이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서 저 멀리 100미터 앞에 보이는 아주 작은 불빛 하나 의지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을 걷던 때였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에 그 밤 혼자 많이 울고 감사했다. 그 후로 휴대폰에 '천사 마리아 언니'라고 저장해 두고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으로 가족처럼 함께 하고 있다. 마음의 빚을 갖지 말라던 그 목소리는 두고두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날 이후로 역시 이곳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에게 최대한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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