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눈을 뜨면 사건 사고였다. 돌이켜보면 꼭 나쁜 일만도 아니었고,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많았다. 절박하고 고생스러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있었고, 뜻밖의 인연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마리아 심정희 언니와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 날도 평온한 아침이었다.
커피를 마시다 '툭' 하고 손등을 스친 잔이 그대로 노트북 위로 쏟아졌다.
전자기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설마.. 삼성인데.. 다시 켜면 괜찮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켜 본 화면은 깜깜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연락을 이메일로 하는데다 미국 생활에 필요한 서류가 전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급히 삼성 AS 센터를 검색해 찾아갔다. 허망하게도 여기선 수리가 불가능했다. 텍사스까지 보내야 했고, 2-3주가 걸린다는 답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와이프가 커피를 쏟았구나." 그 다정한 한마디에 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급한 대로 현지에서 저렴한 데스크 탑을 사서 쓰고 노트북은 한국에서 고치기로 했다.
우편으로 보내고 받고 하면 그 또한 최소 2,3주가 걸리는데, 컴퓨터를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이며 세팅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산 넘어 산이었다. 절박했다. 문득, 동네 도서관 게시판에서 봤던 한국인 커뮤니티가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입해 글을 남겼다. 노트북이 고장 났는데 A/S를 잘하거나, 데스크톱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정보를 줄 수 있느냐고 짧게 질문하고 제발 누구라도 답을 주길 기다렸다.
1시간 쯤 지났을까. 한 여성이 댓글을 달았다. 자신은 IT 분야에서 일하고, 아들도 컴퓨터 공학과여서 간단한 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누군지 알고 덜컥 내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노트북을 맡긴단 말인가. 두려웠다. 주저했더니 집 주소를 불러주며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 집에서 5분 거리였다.
정말 가도 되는 건가? 무서웠지만 절박함이 두려움을 눌렀다.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니 세상 착한 얼굴로 선하게 웃고 있는 중년 여성이 나를 반겼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내 노트북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들이 오면 저녁에 함께 고쳐보겠노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다정하고 착해 보였지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 알고 있을 뿐인데 믿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노트북은 100% 사망했고, 주요 자료는 한국에 갖고 가서 복구하는 게 낫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낙심했다. 부주의한 나를 탓해 무엇하랴. 근처 데스크톱 살 곳을 물었더니 마침 시간이 되니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문가답게 데스크톱의 성능을 스윽 훑어보곤 저렴한 가격에 가뿐하게 사서 우리 집까지 함께 와 세팅을 해주셨다. 한 번 봤을 뿐인데, 뭘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친절하다니. 과분한 친절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내게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나한테 마음의 빚을 갖지 말아요. 나도 처음 미국 왔을 때 많이 도움 받았어요.
그 마음을 잘 간직했다가, 언젠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그때 도와주면 돼요."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않았지만 성당 '레지오' 활동을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그 분의 목소리는 두고 두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말도 안 통하는 이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서 저 멀리 100미터 앞에 보이는 아주 작은 불빛 하나 의지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을 걷던 때였다. 아무 이유도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나를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 밤 혼자 많이 울고 감사했다. 그 후로 휴대폰에 '천사 마리아 정희 언니'라고 저장해 두고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으로 가족처럼 함께 지내고 있다.
물론 그 때 구입한 컴퓨터도 여전히 잘 돌아간다. 선한 마음은 결국 나눔의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모든 낯선 이들, 또 이 곳에서 새로운 정착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나 역시 관대하고 따뜻해지자고 다짐해본다.
오늘의 메시지
뜻밖의 위기는, 뜻밖의 인연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