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기너입니다만

초보에게 관대한 나라, 미국

by Helen Le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한쪽 문을 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는 낯선 하루들. 미국에 도착한 나는 모든 것이 서툰 비기너(beginner)였다. 영어라곤 30년 전 고등학교 때 배운 게 전부인 내가 인생후반전에 영어 현타를 맞아도 제대로 세게 맞았다. 생존하려면 영어는 필수여서 매일 어학원 수업에 집중했다. 읽고 쓰기는 따라갈 만했지만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아들 학교에서 전화라도 오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중하게 메일로 다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공공기관에서 보낸 것인데도 구어체 표현과 낯선 미국 학교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요즘은 ChatGPT 덕분에 한결 수월해졌지만 혹시 내가 뭔가 놓치진 않을까, 한 문장씩 찬찬히 읽고 짧은 답장을 쓰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리곤 했다. 한국에선 5분이면 끝날 일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나는 매일 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아들을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교 시간에 맞춰 우르르 쏟아지는 외국 아이들 틈에 섞인 아들을 발견하면 표정부터 살폈다. 그 날 하루의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 어땠어?"


"엄마, 오늘 완전 스타 됐어요."


아들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은 중학교부터 학생들이 수업하는 교실을 찾아 이동한다. 그런데 아들이 실수로 다른 교실을 들어갔는데 선생님은 그냥 앉아서 함께 수업을 들으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전학생이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물으셨고 아들은 태권도 4품 실력을 발차기와 품새로 선보였다고 한다. 박수와 함성, 한국에 대해 폭풍 같은 질문이 쏟아졌고 그날 이후 아들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어떤 날은 외국 여학생들의 쪽지를 받아오기도 했다.


만약 교실을 잘못 찾은 아이를 교사가 꾸짖었다면 어땠을까? 안 그래도 자신감이 부족한데 부끄러움과 자책 속에서 하루를 괴롭게 보내지 않았을까? 자기 학생이 아닌데도 수업에 참여시키고 격려해 준 이름 모를 선생님께 감사할 뿐이다. 비기너의 실수를 기회로 바꾸어 주었고, 아이의 자존감을 북돋워주었다. 그 후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인 Mr. 젤란스키는 복도에서 늘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며 격려했고, 상담교사인 Ms. 로스는 "너와 네 엄마는 어메이징한 도전을 하고 있어" 라며 항상 아들을 응원해 주었다.


낯선 땅에서 서툰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 준 학교 덕분에, 아들은 중학교 졸업식에서 미국 대통령상을 받았다. 미국 교육 환경이 가진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돌아보면 나 역시 매일 매순간이 초보였다.

운전, 공공기관 서류, 은행 업무, 학교 시스템, 서툴고 버벅거렸지만, 미국은 초보에게 관대했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항상 기다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 올 수 있었다.




오늘의 메시지

초보를 존중하는 태도가 가능성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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