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걷다 보면 답이 보이겠지요

by Helen Lee

"내 맘은 이리 울적한데 말할 사람이 없다.

나도 가끔 활짝 웃고 싶은데 곁엔 아무도 없다."



G-Dragon의 노래 가사가 심장에 콕 박힌 날이 있었다. 타국생활에서 외로움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어디선들 외롭지 않겠는가마는 모두가 비슷한 얼굴,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 느끼는 물리적, 정서적인 단절은 또 다른 빛과 결로 다가온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에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만 선뜻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못한다. 딱히 할 이야기도 없거니와 의미 없는 수다 후에 남는 공허함을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럴 때마다 무작정 공원으로 나섰다. 그리고 걸었다. 매일매일의 풍경이 다르고 햇살도 바람도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차오르던 감정이 제자리를 찾고, 답이 보이지 않던 문제들도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영어는 쉽게 늘지 않았다. 낯설고 서툰 미국 생활에 자존감마저 낮아졌지만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체감할 수 없을 뿐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염려 말고 계속 걸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2022년, 나는 오십에 유학생이 되었다.

KBS 방송작가로 20년 가까이 일했고, 교육청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아들은 입시와 경쟁 중심의 교육 과정 속에서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암기와 문제 풀이에 시달리던 아이의 눈빛은 점점 흐려졌다. 이 아이를 살리려면 지금 당장 환경을 바꿔야 한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이미 충분히 누렸고, 이제는 아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를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순간,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난 하나뿐인 엄마이지 않은가.


결심은 빠르게 행동으로 옮겨졌다. 유학원을 통해 대학원과 아들 학교 입학 서류를 제출하고, F1비자를 신청하고,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이민가방 3개와 캐리어 6개에 짐을 챙길 때만 해도 덤덤했는데 14시간 비행 끝에 JFK 공항에 도착하니 진짜 온 건가 싶었다.


뉴저지에 도착하자마자 숨가쁘게 해야할 일들이 이어졌다. 휴대폰을 개통하고, 은행 계좌를 열고, 가스 전기계약, 가구와 가전제품 구입, 아들 학교, 내 ESL 과정 등록까지. 기본적인 삶의 틀을 어느 정도 갖추고 나서야 겨우 숨이 트였다.


그러나 남편은 3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공항에서 우리 부부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채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남편이 떠난 뒤 느꼈던 그 막막함, 두려움, 날씨마저 우울함을 더해주던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매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오늘도 하나 해결했잖아. 밝은 얼굴로 용기를 불어넣곤 했다.


다행인 것은 아들이 생각보다 학교 적응을 잘했다. 영어유치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아이인데 학교생활이 즐겁다니 놀랍고 안심이 되었다. 첫 학기 all A를 받았다. 건조하고 두려운 삶에 유일한 위안이자 선물이었다.


돌아보면, 오십에 다시 유학생이 된다는 건 단순히 학업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외로움과 두려움은 공기처럼 따라왔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다시 걷고, 배우고, 살아내는 방법을 배워갔다.


걷다 보면 답이 보이듯,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두려움보다 큰 사랑이 있을 때, 새로운 길은 언제든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오늘의 메시지

두려움보다 사랑이 크면 새로운 길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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