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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을 타는 나뭇잎 Nov 23. 2024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그 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다

정신을 차려보니 65마일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지만 멈출 순 없었다. 내비게이션과 무섭게 추격해 오는 뒤 차를 번갈아 살피며 간신히 저속 구간으로 진입했다. 고속도로에서 일단 빠져나가야 했다.


평소대로라면  개의 타운을 지나 1차선 도로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길이었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 미심쩍었지만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이 길이 맞다며 직진이라고 안내했다.


35마일, 55마일을 지나 65마일 구간에 이르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만큼이나  심장도 쿵쾅대기 시작했다. 사방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우리는 뉴저지 주경계선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옆자리 아들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엄마만 믿고 코까지 고는 평온한 얼굴을 보니 먹먹함이 몰려왔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너를 데리고 가야 할 텐데..


한참을 더 달린 후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속도제한 35마일 표지판을 보니 숨이 좀 쉬어졌다. 주유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구글맵을 다시 확인했다. 여긴 어디며, 내비게이션은 나를 이곳으로 데려 온 걸까? 이유를 찾은 순간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내가 찍은 목적지는 뉴저지가 아닌 뉴욕에 위치한 동일한 이름을 가진 태권도 도장이었다.


며칠 전 폭우로 호수가 범람해 도로가 통제됐다는 소식에 좀 멀다 싶었지만 돌아가는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 뉴욕인지 뉴저지인지 주소를 끝까지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오늘 해프닝의 원인이었다.


황당했지만 사태 수습이 먼저였다. 이미 40넘게 도로에서 시간을 소비했다. 주소를 검색하니 원래 목적지까지는 15분 남짓. 다행히 집에서 일찍 나선 덕분에 많이 늦진 않았다. 낯선 길들을 되짚어오며 수 만 가지 복잡한 감정 몰려왔다.


내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다반사겠구나.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더블체크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여겼는데 한 번씩 뒤통수를 맞을 때마다 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외국생활 하면서더 조심하고 확인해야 는데, 잘 아는 길이라고 과신한 탓이다.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잠이 깬 아들은 상황을 전해 듣곤 황당한 너털웃음을 보였다. 10분 밖에 늦지 않았다며 걱정 말고 쉬고 있으라는 위로를 건넨다. 유쾌하게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의 좌충우돌 미국 적응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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