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믿었어.
얼마전 한 아이돌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 속에서부터 쇼츠를 보고, 하루 평균 11시간 숏폼을 본다." 고 밝혀 화제가 됐다. 전형적인 ‘도파민 중독’이다. 많은 사람들이 짧고 강렬한 영상, 끝없는 스크롤, 자극적인 게임, 모두가 빠르고 재미있는 릴스, 쇼츠, 틱톡에 길들여져 있다.
아들은 게임중독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스마트폰 게임은 아들에게 무한정 쏟아지는 도파민 창고였다. 게임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와 남편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아들은 스마트폰에 굶주렸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무섭게 게임에 빠져들었다. 요즘 세대는 게임을 하며 온라인에서 어울린다니 또래문화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휴대폰 사용은 2시간으로 정하고 원칙을 지킬 것을 다짐받았다. 그리고 지켜봤다. 아들을 믿었다. 이러다 말겠지.
그렇게 1년.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책 읽던 아들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들의 얼굴을 뒤집어쓴 몬스터를 만난 기분이었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된 터여서 게임의 ‘ㄱ’ 자만 꺼내도 버럭 화를 내거나, 자기 방으로 올라가 문을 쾅 닫는 날도 있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곤 했다. 타이르고, 달래고, 혼내기를 반복했다.
몇 가지 규칙을 정하고 지키지 못하면 일주일간 IT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내내 고통스러웠다. 아들을 이해하고 싶어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을 같이 해보기도 했다.
캐릭터를 만들고 4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 게임이었다. 아들의 캐릭터는 매끈하게 잘빠진 몸매에 전투복이 꽤나 멋졌다. 내 캐릭터는 흰 민소매와 핫팬츠가 전부였다. 헐벗은 캐릭터가 영 어색했다. 레벨이 올라가야 옷을 구할 수 있다니 이곳도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그렇게 열세 살 아들을 따라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아들은 팀원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어머니시다. 무조건 어머니 지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세 명의 팀원이 분주히 싸우는 동안 나는 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한바탕 교전이 끝나자 아들이 군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엄마,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기 앉아만 계세요.”
세 사람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작전을 들으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버티며 목숨만 지키자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남성이 군용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달리고 있었다.
“아들, 누가 이 차 운전하는데? 엄마 납치됐나 봐.”
“얘들아, 우리 엄마 납치됐다. 출동해!”
순식간에 팀원들이 나타나 차량을 되찾고 나를 구출했다. 긴장 속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수 싸움을 못해 바둑도 포기한 평화주의자가 속옷 차림으로 전쟁터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단 하나. 버티다 사망. 그게 내 인생 첫 배그 경험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게임을 하면 할수록 나는 게임에 부적격한 DNA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아들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게임에 빠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잘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기계처럼 끝도 없이 수학문제를 풀면서 느낄 수 없었던 자기 효능감을 이곳에서 발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도파민 때문이 아니라 학업에 대한 압박과 불안을 벗어나 안정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는 물었다.
"아들, 프로게이머가 되는 건 어때?"
“게임은 취미일 뿐 직업은 싫어요.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중이예요 ”
필요한 건 해답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모른 채 달려야만 하는 한국사회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경로를 이탈할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의지로 이겨나가는 게 어렵다면 환경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쓰는 시간을 달리하고, 사는 곳을 달리하고, 만나는 사람을 달리 해 보면 하고 싶은 게 뭔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명확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에 온 뒤에도 한동안 아들은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럴 바에야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지만 나는 기다렸다. 언젠가 스스로 끝낼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스마트폰 없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짧은 순간의 재미 대신 일정 시간의 집중과 몰입이 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작은 목표를 정해놓고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 11시에 자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학교 트랙팀에서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했다.
패스트푸드가 아닌 건강하고 질 좋은 식단을 섭취했다.
자기 방은 자기가 청소할 것을 요청했다.
사소하지만 작은 일에도 감사한 마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도파민 자극을 최대치로 올리는 게임을 끊기로 했다.
자극적인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끊으면 이전에는 몰랐던 식재료 본연의 맛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감정도 그렇다. 지루함은 진짜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여백이다. 지나친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헐적 도파민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 나 이제 배그 안 하려고요. 탑 찍었고, 더 이상 미련이 없어요.”
기적이었다. 그리고 학교생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칭밴드에 가입해 키보드를 연주했고 풋볼 경기가 있는 날이면 친구들과 팀의 우승을 목청껏 응원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며, 뉴욕에서 열리는 마칭 퍼레이드에도 참가했다. 트랙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각종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여름, 중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의 중학교 졸업식은 교장, 교감 선생님의 격려사, 그리고 250명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졸업장 받는 게 전부다. 친구들과 기념 촬영하고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받은 노란 서류봉투를 펼쳐보았다. 졸업증서와 함께 나란히 담겨있는 대통령상. 두 눈을 의심했다.
영어도 서툰 아들이 이런 큰 상을 받다니. 우리 둘 다 얼떨떨했다. 말로만 듣던 대통령상이 맞나 의심스러워 지인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이 되었다. 아들과 둘이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나눴다. 장하고 대견했다. 나는 좀 울었다. 지난 시간 고군분투한 아이의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짧고 강렬한 자극 속에서 방황하던 아들은 이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성취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성실하고 겸손하게, 계속 걸어가자고.
오늘의 메시지
짧은 자극은 순간이지만, 오랜 기다림과 믿음은 아이를 단단하게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