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거리두기가 필요해요
아침 6시. 눈을 뜨면 명상과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연다. 침대를 정리하고, 레몬 한 조각 띄운 따뜻한 물을 마신다. 창문을 열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음악을 틀고, 박자에 맞춰 아침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행복의 이유는 매일 다르고 감사의 대상도 늘 새롭다.
나는 J형 엄마다. 부지런하고 계획적이며 오늘 할 일은 반드시 오늘 끝내야 마음이 놓인다. 덕분에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제 몫은 해내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노는 법을 알지 못했다. 노는 건 시간 낭비이며, 칭찬받지 못하는 행동이라 여겼다. 반면 아들은 P형이다. 자유분방하고 노는게 먼저다. 책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해야 할 일보다 놀고 싶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다.
엄마가 되고 난 후 가장 큰 어려움은 활동적인 아이와 놀아주기였다.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소개한 책들을 정독하고 따라 했다. 하지만 노는 데 재능이 없는 탓에 쉽게 지치곤 했다. ‘세 살의 심리학’부터 ‘하루 15분 책 읽기의 힘’까지 서재 한편을 육아서적으로 가득 채우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내 아이는 책에 나오는 아이가 아니며, 나 역시 책에 나온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구절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내 아이의 하루를 망치겠어.'라고 결심하는 엄마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아이가 '엄마'라는 단어를 뱉기까지 수 천, 수 만 번 반복해서 들려주던 그 인내와 기다림은 어디로 간 걸까, 우리 아이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눈을 뜰 때마다 들려주던 다정한 목소리는 왜 갑자기 날이 서게 된 걸까? 아이들은 노는 게 일이고, 놀이가 밥이라는 사실을 그땐 알지 못했다. 정리되지 않은 침대, 널브러진 옷가지, 아무렇게나 흘려 쓴 공책들,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에 기질과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리정돈 끝판왕 J형 엄마와 자유로운 영혼 P형 아들은 잘못된 만남인 것만 같았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잔소리와 통제로 아이를 몰아붙였고 공부와 독서, 피아노까지 내 기준대로 아이를 만들려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래야 제대로 키우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미국에 와서야 조금 달라졌다. 공부가 힘든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었다.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매일 조심하는 나와 달리 아들은 뚜벅뚜벅 걸었다. 천성이 밝고 노는 걸 좋아하는 재미있는 아이라 영어가 서툰데도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생일파티에도 자주 초대받았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니 풍경도 달라졌다.
엄마의 불안이 아이를 구석으로 몰고 작아지게 만든 건 아닌지, 지난 시간을 반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낯선 환경은 우리를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의지할 곳은 둘 뿐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날카롭던 내 목소리는 점차 부드러워졌다. 어떤 결정을 하든 아이의 생각을 먼저 물었다. 말이 안 되는 주장에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의 의견은 참고만 해달라고 가볍게 덧붙이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는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선택의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하자, 아들은 점점 신중해졌다.
다행인 것은 미국은 한국에 비해 모든 게 느린 편이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도 되고, 설령 첫 번째 선택이 실수였다 해도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또 주어진다. 한 번의 지각,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인 낙인이 되지 않았다. 시험을 망쳐도, 숙제를 못해도, 다시 기회가 있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해갔다.
3년이 지난 지금, 아침 식탁은 조용하지만 따뜻하다. 학업 스트레스는 있지만 아들의 얼굴엔 생기가 있다. 감사한 일이다. 사춘기를 건너는 아이는 부서지기 쉽다. 이 시기를 현명하게 건너는 방법은 결국 적당한 거리두기 아닐까.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엄마의 사랑이 자연스레 흐르게 두는 것, 무엇보다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오늘의 메시지
사랑은 붙잡을 때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었을 때 더 잘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