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선생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봄, 담임교사와 학기 초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아들의 장점을 한참 나열한 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00이랑 친하게 지내요. 그런데 그 아이가 LH 살아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처음 만난 학부모에게 굳이 아이 친구의 거주지를 알리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표정관리를 하느라 당황했지만, 별다른 대꾸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상담은 그렇게 끝났지만 그 말은 손 끝에 박힌 가시처럼 내내 불편했다.
2015년, 당시 살고 있는 아파트로 아이들끼리 편을 가르고 계층을 형성한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사회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터라 선생님의 말씀은 편견과 차별의 언어로 다가왔다. 앞으로 1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살짝 조심스러워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우리 마을은 14개 공공기관이 이주해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였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파트, 빌라, 주택, 오피스텔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주택에 막 입주한 상태였고, 아는 이웃이 많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들이 친하게 지낸 그 아이는 중국인 엄마를 둔, 이중언어를 능숙하게 하는 밝고 똑똑한 아이였다. 결국 그 아이는 1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
교실 안에서 어떤 일들이 진행되는지 학부모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이의 필터를 거친 내용들은 사실과 달리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1학년 내내 나를 힘들게 한 건 담임 선생님의 편견이나 차별이 아닌 '독서록' 숙제였다.
아들은 이름을 겨우 쓰기 시작한 시기였고, 7살까지 자연 속에서 놀며 자란 아이라 학습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유일한 학습이라면 책을 많이 읽은 경험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사회에서 나는 참 대책 없는 학부모였다.
3월 둘째 주부터 매주 두 편씩 독서록 쓰기를 과제로 주셨다.
아이의 손을 감싸 쥐고, 아이가 책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면 그대로 받아 적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둘이 함께 글자를 그렸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렀다.
놀랍게도 그 반에서 4개월 만에 300권, 200권 독후감을 쓴 아이들이 나왔고, 나란히 1등과 2등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TV에서만 보던 아이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매주 2개씩 쓰는 것도 벅찼던 우리에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아이를 키웠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에 접어들면서 아들은 스스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고 12월에는 혼자서도 제법 괜찮은 글을 써냈다. 불과 1년만의 변화였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는 날. 아들이 상장을 하나 받아왔다. '독서 성장 플래너 상'.
1년 내내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성장에도 의미를 두고 아이를 격려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첫 만남에서 비롯된 '성적'과 '집'으로 아이들을 분류하는 나쁜 교사라는 프레임이 1년 내내 지속됐던 것은 아닌지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괴롭힌 건 사실 숙제 자체가 아니었다. 아이의 '집'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교사의 시선,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방식이 문제였다. 편견과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속도'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 아이가 경험한 1학년의 풍경은 단순한 한 학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 교육이 품고 있는 구조적 축소판 같았다. 누군가의 거주지를 은근히 구분짓는 말 한마디는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고, 책을 몇 권 읽었는지 수치로 겨루는 방식은 글쓰기의 즐거움을 경쟁의 도구로 전락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깨달았다. 부모인 나조차도 불안과 조급함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아이가 자기 속도로 성장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견녀내야 하는 가장 큰 숙제였다.
오늘의 메시지
아이의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비교와 편견보다 중요한 건 그 아이가 걸어가는 고유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