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학원에서 만난 인연, 헝가리 친구 ‘카티’

낯선 땅에서 시작된 우정

by Helen Lee

내가 받은 F1 비자는 어학원에서 ESL 과정을 마친 뒤 대학원으로 입학하는 조건부 비자였다.

첫 수업을 받던 날, 교실엔 어색한 공기가 가득했다. 코비드 직후라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학 신입생의 풋풋함이나 설렘이라고 할 만한 분위기는 없었다.

서로 다른 국적, 다른 나이. 30명의 클래스메이트가 30개의 사연을 품은 채 교실에 들어섰다. 한국, 중국, 일본, 태국, 터키, 러시아, 헝가리, 볼리비아,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자메이카까지. 50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세계가 갑자기 내 앞에 펼쳐졌다. 어색하게 시작된 수업은 한 달, 두 달이 지나며 묘한 동지애로 변했다. 어학원은 학교라기보다 서로의 상처와 결핍을 위로하는 작은 안식처 같았다.

영어를 잘하게 되면, 졸업을 하면, 무엇이든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희망 뒤에는 늘 불안이 따라다녔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낮엔 공부하고 밤엔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국적은 달라도 미국살이의 고단함과 이방인이 느끼는 외로움은 놀라울 만큼 닮아있었다.

어학원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영어가 아니라 입을 여는 일이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문법부터 떠올리는 습관 탓에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가게에서도 외국인들이 “What?” 또는 “Excuse me?”하고 되물으면 순간 기가 죽고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영어는 실력이 아니라 기세라는 사실을.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 대부분 이해했다. 기죽을 필요도, 스스로를 검열할 필요도 없었다.


어학원에서의 시간이 답답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삶과 문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앉아서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 많은 얼굴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헝가리에서 초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던 ‘카티’

터키 치과의사 부셰, 중국 타이거맘 스텔라, 일본새댁 호나미, 태국의 차차야, 아르헨티나의 나디야와도 친했지만, 카티와의 우정은 유난히 깊었다.


비 오는 날, 우연히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준 일을 계기로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이후 서로의 집에 초대해 그녀는 굴라쉬와 슈니첼을, 나는 김밥과 잡채를 준비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카티는 이미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남은 음식과 라면을 포장해 주며 “집에 가서 가족들과 먹어봐” 했더니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이 K-푸드의 매력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K-푸드를 제대로 알렸다는 생각에 혼자 뿌듯했다.

최근 카티는 딸이 케데헌 OST인 ‘골든’을 너무 좋아한다며 그날 먹었던 음식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카티에게 나는 한국을, 카티는 헝가리를 알려준 셈이었다.


“헬렌, 너는 정말 용감해. 아들도 너도 아주 잘하고 있어.”

“카티, 너도 잘 될 거야. 너와 네 가족을 위해 기도할게.”

우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 수 있었다. 속 깊은 얘기를 나눌 때도 100% 다 이해하거나 전하진 못했다. 그래도 충분했다. 우린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 받았다. 그 후 카티는 비자가 만료되어 귀국했고, 지금은 헝가리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며 독일 국제학교로 이직을 준비 중이다.

둘이 용감하게 스크린도어도 없는 뉴욕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의 ‘뉴욕 필하모닉 공연’을 보러가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MOMA를 누비던 기억들은 지금 떠올려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카티와 그녀의 남편 아쿠슈, 그리고 두 아이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내 소중한 친구 카티, 앞으로 걸어가는 너의 모든 계절이 아름답고 축복으로 가득하길 멀리서 기도한다.



오늘의 메시지

어학원은 서로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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