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빵집 주인이 된다고?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집을 옮기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였고, 그다음으로는 나의 일 때문이었다. 이것저것 일 벌이는 것이 나의 직업이라면 직업인데, 그중 가장 즐겁게, 그리고 오래 하고 있는 일은 '빵'을 만드는 일이다. (사실 '일' 보다는 '사명'에 가깝다)
빵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면 그곳은 단연 베이킹 스튜디오가 아닐까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빵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빵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곳. 내가 꿈꾸던 공간이자 내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주택으로 가게 된다면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스튜디오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이사 갈 주택 건너편 집에서 꽃 공방을 운영하고 있길래 나 역시 빵 공방을 차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거침이 없는 편이라, 빵 공방에 대한 허가를 받고자 무작정 구청으로 향했다.
건축과로 안내를 받고 뚜벅뚜벅 걸어가 지구단위계획 담당자를 찾아갔다. 이사 갈 집의 주소를 이야기하고 담당자 옆에 앉아, "이 집에 빵 공방을 차리려고 하는데 혹시 가능할까요?"하고 물었다. 담당자는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답했다. "공방이 아니라 제과점을 차리셔야겠는데요?"
뭐라고요? 제과점이요?
그랬다.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는 '서촌'은 전통 가옥 보호 차원에서, 골목마다 집마다 용도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한옥 보존 구역에는 한옥 밖에 지을 수가 없고, 대로변이 아닌 골목 안쪽에는 상가가 들어설 수 없다. 그런데 한옥 옆집이면서 골목 안에 위치해 있는, 우리가 계약한 주택이 정확히 '제. 과. 점'으로 용도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 걸까?
보고 듣고도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제과점이요? 골목 안에서 빵을 구우면 냄새가 많이 날텐 데요?" 담당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빵 냄새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요?"
그랬다. 그녀도 나와 같은 종족(=빵순이)이었던 것이다. 몇 번이나 확인을 한 후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밖을 나섰다. 주택을 계약했을 뿐인데 졸지에 빵집 주인이 되었다. 설레면서도 어이가 없었고, 좋으면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갑자기 빵집 주인이 된다고?
주택의 1층 절반이 상업 공간으로 바뀌면서 집의 구조도, 도면도, 디자인도 모두 변경되었다. 예산도 당연히 빵 부풀 듯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