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션록홈즈 Nov 24. 2021

철거

흔적 남기기



주택 철거가 시작되었다.


'철거'라는 단어는 집을 처음 지어보는 나에게는 무척 생소한 것이어서 누군가 입 밖으로 내뱉을 때는 물론, 서류에 적혀있는 것만 봐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채우기 위해선 먼저 비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집을 나와 내 가족의 공간으로 채우기 위해 비울 것은 비워야만 한다.


리모델링에 관한 견적이 확정되고 난 뒤, 바로 다음다음날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철거하는데 먼지가 나지 않아 좋을 거라고 주변에서는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해주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 들러서 진행 상황을 체크하라는 조언도 많이들 해주었다. 내 성격이 이상한 건지 철거라는 단어만 들어도 뭔가 불편한데 매일같이 현장에 찾아가 잘 부서지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그냥 행인처럼 슬쩍 지나가면서 집을 대충 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해가 진 컴컴한 밤이 돼서야 주택에 들어가 오늘 하루 잘 부서졌는지 안부(?)를 묻기도 핬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답답한 날이 많았다.


철거도 리모델링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잘 살펴봐야겠다고 결심한 어느 날, 용기를 내 집에 들어가 구석구석을 사진에 담았다.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이기에 그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어쨌든 앞으론 내가 살 집이지만 전 주인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던 집이므로 그 사랑을 대충 여기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 주인아저씨가 이 집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택 안과 밖으로 곳곳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초록 식물들이 그 사랑을 말해주고 있었다. 겉으로는 시들어 죽어가는 줄로 보였던 대추나무가 세상 달콤한 열매를 맺지를 않나, 무슨 덩굴인 줄도 몰랐던 녀석은 노란 참외 열매를 맺기도 했다.


비록 집의 대부분이 철거될 예정이지만 전 주인아저씨의 애틋한 사랑은 유지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 주인이 아끼던 티가 나는 집은 왠지 나 역시 아껴줘야만 할 것 같기에.



지난 십 년간 주인 분들과 잘 지냈던 만큼 앞으로의 시간도 우리와 잘 지내주길 바랄게.




작가의 이전글 This is 집문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