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점을 조심하자
주택가 골목에서 빨간 점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눈썰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심지어 계약한 주택 내부에 빨간 점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그 점 때문에 집 공사 진행에 빨간 불이 들어오리라고는 정말이지 조금도 예상 못했다.
빨간 점은 토지의 소유자가 지적 측량이 필요할 경우 한국국토정보공사에 의뢰해 측량을 진행하고, 측량의 결과에 따라 토지의 경계점을 표시하는 점이다. 즉, 쉽게 말하면 내 땅인지 네 땅인지 경계를 알려주는 표시인 것이다. 따라서 주택을 계약할 때 집 안에 빨간 점이 찍혀 있다면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집을 계약한 시점에 전 주인 할머니로부터 빨간 점에 관한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할머니의 뉘앙스는 이러했다. "여기 빨간 점 보이지? 여기부터 저그까지가 뭐 래더라 옆집 땅이랴. 근데 이 동네에 땅이 원래 그랴. 맞물리지 않은 집이 없으니까 그냥 알아만 둬. 우리도 알고 지낸 지 몇 년 됐어. 그냥 알고만 있으면 돼야."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나는 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알고만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했고, 알고만 있는 체로 공사를 진행했다.
물론 옆집을 포함하여 집 주변 10개 정도의 집에 공사가 들어가기 전 인사를 하러 다녔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귤 한 박스와 종량제 봉투를 드리며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저녁 시간에 댁에 안 계신 분들도 꽤 많아, 3일에 걸쳐 찾아뵙고 인사드린 집도 있었다. (이 정도면 나름의 최선을 다했노라 합리화하는 중)
그렇게 철거를 시작했고 요란한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진 지 며칠째 되던 날, 옆집에서 연락이 왔다. 빨간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