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지적측량
옆 집 사장님(존칭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에 의하면 희미해진 빨간 점은 2년 전, 옆 집에서 측량을 진행할 때 찍었던 점이라고 한다. 더 정확한 측량을 위해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측량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 역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경계 측량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집도 계약했고, 리모델링을 위해 철거가 들어간 마당에 뭐 큰 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즉시 한국 국토 정보 공사에 전화를 걸어 지적측량을 신청했다. 지역마다, 측량의 경우에 따라 비용은 다르겠지만 우리의 경우 7-80만 원 선이었다. (여기에서 한 번 놀랐다.) 날짜와 시간이 확정되었고, 옆 집 사장님께도 공유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경계 측량의 날이 왔다. 하필 비가 온 다음 날이라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겁나리 추운 날이었다. 측량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10-15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건 허허벌판에 위치한 네모 반듯한 땅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철거된 자재들이 바람에 날아다닐 만큼 바람이 차고 강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지켜본 측량은 정확히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집 안팎으로 빨간 점과 빨간 말뚝이 사정없이 박혔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뒷 집 마당이 우리 집의 일부로 확인되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여기에서 두 번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뒷 집에는 미리 측량에 관한 말씀을 못 드린 터라, 함부로 뒷 집 마당에 들어가 말뚝을 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측량팀은 떠났고, 2차 측량을 기약했다. (참고로, 측량을 진행한 후 3개월 이내 A/S를 신청하면 비용의 10%만 추가로 내면 된다.)
옆 집과의 경계 측량 결과는 처참했다. 전 주인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여기부터 저그까지'의 개념이 무려 2평 가까이 될 줄이야.. 게다가 하필이면 우리 집의 대문이 위치하는 곳이 경계점으로 확인돼, 집에 드나들려면 몸을 옆으로 틀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옆 집 사장님은 빨간 점이 찍힌 곳을 찰칵찰칵 휴대폰으로 찍고 줄자로 정확히 재면서 외치셨다. "공사 당장 중단하세요!" 이 땅에 관해 협의를 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공사도 중단하라는 중지령이었다.
'제 심장도 중지될 것 같아요..'
그날 밤, 부동산과 전 주인 할머니를 모두 집으로 불러 사실 확인을 하고 대책 없는 대책 회의를 했다. 누구에게 화를 낼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했고, 결국 소송으로 가는 것이 답인가 하는 막막한 생각까지 들었다. 골목의 정을 느끼고 싶어서 골목 속 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했는데 주택살이를 해보기도 전에 문제가 생기니 고구마를 오십 개쯤 목 안에 쑤셔 넣는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옆 집 사장님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