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특별전 : BEYOND TIME>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4월의 어느 날, 킴벨이 내게 말했다.
"가고 싶은 전시가 있어서 얼리버드로 구매했어. 시간 날 때 우리 같이 가보자"
"어떤 전시인데?
"응~ 샤갈!"
그리고 몇 개월 뒤, 킴벨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모처럼 토요일에 시간이 생겼다. 킴벨에게 이번 주말 전시 보러 가자고 하니 정말 갈 수 있는지 놀라 되물으면서도 기분 좋아했다. 그간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 주말 하루도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렇게 가게 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사람들이 샤갈 전시에 이렇게나 관심이 많을 줄 몰랐다. 대기 인원이 무려 200팀. 7월의 토요일 오후 2시 기준이니 이 시간대에 오실 분들은 대기 번호를 먼저 뽑은 후 근방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입장시간과 딱 맞겠다 싶다. (점심 먹고 대기 번호 뽑은 1인)
그럼에도 대기 번호가 한참 남이 있다면 2층으로 올라가 보시길 추천한다. 로비에 의자가 비치되어 있어 대기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적거리는 1층에 비해 한적한 이곳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니 체력 안배를 위한 나름의 꿀팁이겠다. 1시간을 기다려서야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샤갈과는 지난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이후 3년 만의 재회였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처럼 설렘과 어색함이 공존했다. 전시실 입구를 가리는 암막커튼을 걷어내고 입장하자, 샤갈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널 기억하고 있어.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좌측 그림은 앞서 언급한 성서전 전시 마지막 세션에 걸려 있는 작품으로, 샤갈은 이 작품을 완성한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 나는 이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그가 들려주는 말을 잠잠히 들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우측 그림 <라 뤼슈와 몽파르나스>는 이번 샤갈전 전시에 첫 번째 순서로 걸려 있는 작품이었는데 그림의 구도나 느낌이 <또 다른 빛을 향하여>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특별한 추억을 회상케 하는 작품이 전시회 입구에서 나를 맞이해 주니, 3년 전 샤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끝이 아닌 잠시 멈춤이었고 오늘 이곳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리라.
※ 3년 전 샤갈과 나눈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샤갈이 내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눌러보시라.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가 세계 최초 공개되는 미공개 원화 7점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그중 일부는 사진촬영이 가능했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을 배려하여 따로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170여 점의 작품 중, 킴벨과 내가 인상적으로 본 작품을 한 가지씩 선정해 보았다.
<서커스 혹은 고리잡이 광대>는 전시장 중간쯤 코너를 돌다 보면 마주하는 작품이다.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빨강과 초록, 노랑과 보라, 파랑과 주황의 조화가 무척이나 샤갈스럽다. 킴벨은 이 작품을 고르며
처음 해본 상상인데,
우리 집에 이 작품이 걸려 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 봤어
현재 나의 상태와는 다르게 활기차고 힘이 나는 느낌이야.
알록달록하고 생글생글한 색감과 구도에서 에너지가 느껴져
라고 말했다. 화이트톤 벽지에 소품과 가구 모두 깔끔한 톤으로 꾸민 우리 집에 한참 결이 다른 무언가를 걸어보겠단 생각을 킴벨이 했다는 게 놀라웠다.
프랑스 니스로부터 도시를 홍보할 포스터를 의뢰받았을 때 샤갈은 총 열세 점의 그림을 내놓았다고 한다. <니즈와 코트 다쥬르 석양>은 석양이 지는 니스의 해변가, 주위가 어스름해지고 해가 지면 이제 달이 뜨겠지 하고 하늘을 봤더니 알록달록한 꽃풍선이 두둥실 떠있는 모습이다. 내가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여태껏 그림을 보며 이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기 때문이다.
잔잔하면서도 낭만적인 니스는
낯을 가리는 나를 잘 받아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방대한 작품만큼이나 다양한 공간 연출이 인상적이었는데 기억나는 공간 두 곳을 소개해본다.
첫 번째 공간은 하다사 의료 센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곳이다. 이스라엘의 12지파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각 지파의 어떤 모습을 보고 이런 색감과 문양을 그리게 되었는지 샤갈에게 묻고 싶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장소라 인증샷을 남기기에 좋은 장소였는데 개인적으론 흘러나오는 노래가 살짝 아쉬웠다. 만약 소년합창단의 소프라노 목소리나 파이프오르간 음악이 흘러나왔다면 공간과 작품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 공간은 전시의 마지막 세션인 꽃을 주제로 한 곳이다. 꽃을 좋아하는 킴벨이 그곳에 걸린 작품들을 흥미롭게 보았다면, 나는 전시장 중간에 설치된 크고 높은 유리 거울에 눈길이 갔다. 열 두 면으로 이루어진 전신 거울 구조물을 바라보면 벽면에 걸린 꽃 작품이 보이기도 하고 내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얼굴과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꽃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꽃처럼 아름다운 나와 우리도 있다는 걸 알리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전시장을 나서는데 킴벨이 샤갈의 출애굽 그림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난 성서전에서는 색채가 없는 흑백톤의 출애굽 작품을 보았는데 여기에 걸린 그림엔 색깔이 있더라.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으며 망명의 고통을 아는 샤갈, 개명 전 모세의 이름에서 유래된 모이셰 샤갈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그에게 출애굽 이야기는 자신의 소울과도 같은 것이리라.
이 작품에 대한 오디오가이드 박보검 님의 설명을 통해 샤갈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또 위로를 받는다.
샤갈은 고통마저 시처럼 그려냈습니다.
절망은 그의 손끝에서 색과 선으로 녹아들고,
그 안엔 작지만 분명한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