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나는 어린이 교재 편집 디자인과 삽화 작업을 하는 5년 차 편집디자이너였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할 때 나는 과에서 유일하게 어린이 교재 편집 쪽으로 빠졌다. 대게 광고 디자인, UI디자인, 잡지 쪽으로 가길 원하지 출판, 특히나 어린이 쪽은 상대적으로 박봉에 인기도 없고 정보도 많지 않다. 누구나 알 정도로 크고 유명한 출판사가 아니고서야 나머지는 영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선택한 분야이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았고 거기에 내가 아이들 교육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자부심 또한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이를 너무나 좋아하다 보니 작업을 하면서도 이 책을 보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났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 때문에 이 일에 대한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1. 언제나 불확실한 퇴근시간과 주말근무.
개발팀에서 원고를 주어야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 여유롭게 출퇴근을 하다가도 일이 몰아치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2~3달 가까이를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해야 했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고 나면 성과금도 나오고 일한 만큼 장기간 쉴 수 있게 배려를 해주어서 좋았지만, 이건 아이가 없는 혼자 일 때나 좋지 아이가 있다면 정말 부적합한 근무일정이 아닐 수 없다.
2. 여성 직원이 많기는 하지만…
출판 업계는 보통 여자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서로 육아를 이해해주기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직원들끼리의 이야기. 어찌어찌 육아는 가능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시간을 편히 쓰면서 육아를 한다? 그런 넓~~~ 은 마음을 가진 출판회사가 있다면 아주 소수이거나 판타지 속 이야기 일 것이다. 업계에서 글을 쓰고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가 없는 젊은 여성, 미혼의 여성,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 사회로 나온 중년의 엄마들이었다.
3. 현재 위치의 불안정성
아이를 낳고 돌아온 직원의 자리가 없어지고 다른 부서로 간다던지, 당당한 권리인 단축근무를 쓸 때 상당한 눈치를 보는 상황들을 종종 보았다. 모든 업계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본인이 다녔던 회사에서는 육아하며 함께 일을 할 수 없음이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본사에 부여된 서울시에서 인정한 여성친화기업이란 명패가 참 우스워보였다.)
물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실제로 그렇게 다니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하지만 난 아이를 종일반과 조부모, 시터분께 맡기면서 까지 불안해하며 일을 다닐 자신이 없었다. 다들 잘해주시겠지만 그렇게 까지 하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이와 부모 모두가 만족하는 삶일까? 그리고 애초에 이렇게 불확실한 근무 환경에서 아이를 임신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에 대한 생각이 들 때쯤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내 생각의 끝은 '아이와 회사일은 공존할 수 없다.'였고 그렇다고 둘 다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를 너무나 키우고 싶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키우게 된다면 나 자신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해서 일을 해보면 어떨까? 그럼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필두로 6개월 동안 나만의 퇴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퇴사를 하게 된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찾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전천후 디자이너가 되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하게 된다면 일은 충분히 많이 있다. 하지만 흔한 디자인 아르바이트와 같은 일을 하게 된다면 나만의 경쟁력이 떨어져 내가 분주히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보이지 않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6개월 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특별하게 잘할 수 있는 일, 새롭게 배워서 써먹을 수 있는 일] 이렇게 3가지를 목표로 만들어 생계도 유지하면서도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해 보기로 했다.
1. 내가 할 수 있는 일
간단하게 말하면 원래 하던 일들을 하면 되는 것이다. 편집 디자인과 삽화를 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어 일을 하면 된다. 직장인일 땐 회사에서 주는 일 야금야금 받아먹으며 일하면 되는 온실 속 화초였지만, 프리랜서가 되면 내가 직접 홍보도 하고 외주도 따내야 하는 야생화가 되어야만 했다.
2. 내가 특별하게 잘할 수 있는 일
평범한 편집디자이너 & 삽화가가 아닌 좀 더 특별한 나만의 키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어 내세울 수 있는 특장점이 뭐가 있으며, 그걸 어떻게 살려서 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3. 새롭게 배워서 써먹을 수 있는 일
전문 삽화가 수준으로 그림을 그릴 정도의 실력이 아니어서 그 부분에 대한 목마름이 항상 있었다. 그렇다고 그림에 미칠 듯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을 어느 정도 키워주면서 사업화할만한 정보가 필요했다.
이렇게 큰 틀을 잡은 후 내가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만들어 가야 할지 열심히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혼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계획을 잡은 후 남편에게 말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