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리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다는 첼로 선생님의 말이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악기는 목소리란다. 다르다고 했다. 일반인과 다른 굵은 성량이라고 했다. 소프라노에 적합할 거라고 하셨다. 몸이 악기니 얼마나 좋겠냐고 하셨다. 혹시 어릴 적 성악을 하려고 하지 않으셨냐고.
쉽게 남의 말을 믿지 않는 나는 극구 손사래를 쳤지만 동시에 잠시라도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발동했다.
"제가 조수미처럼 어린 시절에 이태리 유학을 갔으면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될 수 있었을까요?" 하며 너스레를 떨어도 보았다.
사실 둘째 아이 두 돌 무렵, 내 나이 서른 중반 일상의 일탈을 꿈꾸며 2개월 정도 성악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셋째 임신을 핑계로 관두긴 했었다. 임산부에게 복식 호흡은 적절하지 않다는 산부인과 담당의의 조언을 들었던 것 같다. 외고를 진학한 순간부터 택해진 어학으로의 길로 인해 음악의 길은 나에게로부터 멀어져 갔다. 삼십 대 중반 또 한 번 갈 뻔한 음악의 길을 다시 한번 보류했었다.
성악이라... 현재 현악기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데 성악까지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러면서 집에 와서 성악 아마추어를 검색하고 있다.
나는 음악을 가지고 남은 인생 동안 무얼 할 수 있을까? 바이올린을 전공할까? 첼로를 전공할까? 음대는 갈 것인가? 재즈 피아노는 어떨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 음악 학교 설립?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목표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싶다. 다만 실력 추구를 위한 스트레스가 악기를 향한 흥미를 추월하지 않도록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 중이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이들 모두 스스로 음악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가의 길을 가도록 내던져졌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예술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진짜 예술가들은 돌연변이로 태어나 그것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만둘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유로 불행하고 같은 이유로 행복한 양가적인 사람들이다." (p.47-48)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음악과 삶> 중
나이 마흔셋에 스스로 음악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나는 어쩌면 이들보다 더 강력한 내적 엔진을 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악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의 행보는 엄마가 시키지 않은 것, 성인이 돼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운명처럼 느끼고 있는 음악으로의 길. 지난 40년 동안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어로 관련 일을 하고 유학도 다녀왔지만 나는 어쩌면 돌아 돌아 매 순간 음악의 길을 향해 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진짜 나의 길이 시작되었다. 다시는 음악으로의 길을 보류하지 않겠다.
내가 아는 나이 든 많은 두더지들은 그동안 자신의 꿈보다 내면의 두려움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다는 걸 후회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상상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