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은총

-토머스 머튼의 <칠층산>을 읽다-

by 마음은 줄리어드

김장철이다. 이쯤이면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서 종일 불편한 시어머니와 일할 생각에 볼멘소리를 한다. 이 와중에 김장 한 번 안 해본 결혼 14년 차 며느리가 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나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첫 7년은 공부한다고 우리 부부 단둘이 미국에 가버렸다. 학업을 마치고 둘째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한 1-2년 동안 산후우울증 때문에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 자격으로 또 면제. 그 후로는 연이은 셋째 임신, 출산, 넷째 임신, 출산, 네 아이를 키워 힘들다는 명분으로 지금껏 쭉 김장 면제를 받았다.


누군가가 "애가 넷이라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을 하면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애가 하나라, 둘이라, 덜 힘드신가요? 혹시 당신을 무척 힘들게 하는 시댁이 있진 않나요? 저는 애는 넷이라 힘에 부치지만 시댁 잘 만난 복은 있어요." 그러면 수긍한다. 고통의 총량은 비슷한 법, 누구에게나 삶을 힘들게 하는 고통은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 어머니는 오늘 김장을 하신다. 그리고 내일은 김장 네 통을 가지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져다주신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7년 동안 한결같이 그러셨다. 이런 비유가 부적절할지도 모르겠지만 남자에게 군대가 있다면 여자에겐 임신, 출산이라는 고난이 있다. 남자에게 매해 예비군 훈련이 있다면 여자에겐 해마다 김장과 명절이 있다. 나는 군대는 네 번 다녀왔지만 예비군 훈련은 쭉 면제받고 있는 셈이다. 명절에도 시댁에 가서 11시까지 늦잠 자는 며느리는 세상 나밖에 없을 거다. 그동안 밀린 잠 좀 푹 자라고 깨우지도 않으신다. 어찌나 시댁에만 가면 잠이 쏟아지는지 아이들이 일어나도 아침을 먹여줄 어머니가 계신다는 생각에 무장해제되버린다.


막둥이도 이제 겨우 똥 오줌 가리니 내년에는 나도 더 이상 김장을 피해 갈 명분이 없다. 남편이 휴가를 내게 해서 어머니랑 김장을 같이 하고 싶다. 그냥 오손도손 어머니랑 앉아 김치 양념 버무리고 같이 수육도 삶아 먹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오늘 100킬로그램 김장을 어머니의 두 동생, 이모님들과 하시면서 어제 또 택배를 부치셨다. 새 김장 김치 먹을 때까지 먹으라고 총각김치, 물김치, 섞박지까지. 나는 이 택배를 정리하며 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신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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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보고 싶은 나의 (시) 어머니, 아버님, 그리고 당신들이 선물처럼 보내주신 내 사랑, 한결같은 내 신랑, 그리고 우리가 사랑해서 낳은 네 아이를 생각한다. 신이 마음이 어지럽고 생각이 많아 복잡한 이 못난 사람에게 사랑이 넘치는 (시)부모님과 네 명의 아이를 허락하신 이유, 그리고 쓰게 하시는 이유에 대해 오늘도 생각한다. 그건 바로 내가 받은 넘치는 은총 (Showering Grace)을 세상에 조금이나마 글로 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은총에 순응하는 은총, 그리고 글 쓰는 삶을 오늘도 꿈꾼다.


해결책은 은총뿐이다. 그것은 은총에 순응하는 은총이다. (p.429) - 토머스 머튼, 칠층산-

2019.11.20

우리 어머니 김장하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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