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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Aug 05. 2020

작가로 살아보는 연습같은 하루

어느 날 방을 정리하다가 박스 안에 담겨있는 수첩들을 보았다. 군대에 입대하며 받은 병영 수첩을 시작으로, 직장이나 소속이 있던 2015년까지, 매년 크기는 달랐지만 한해를 함께 했던 수첩들이 한 권씩 생겼다. 한해의 구체적인 기록이라 버리기 아까워 모아 두었다. 일정 페이지에는 한 주, 한 달의 계획들과, To Do List처럼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메모 페이지에는 일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들과 기록들이 가득하다.      


빼곡한 기록을 보면 이때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가도, 저만큼 쏟았던 에너지와 지금의 삶은 연결이 흐릿해 보였다. 빼곡한 글자만큼 그 당시에는 일이 삶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였다. 외부에서 주입했건 스스로 그것에 취해있었건 그 페이지에서, 일은 마치 하루가 움직이는 ‘중심’이었다. 그때의 열기가 다 무엇이었고 지금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첩을 볼수록 일이 부여한 의미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 버린거 같았다. 이리저리 들춰봐도 공허해졌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수첩은 쓰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주간이나 월간 단위의 계획을 작성하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렀다. 삶은 수첩처럼 계획되지 않았고, 그렇게 열심히 계획하지 않아도 삶은 살아지니 딱히 필요가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월급을 받던 직장에서 해고된 2013년 3월 5일. 다음날 아침이 되자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막연히 ‘그림을 그려보자’하고 책상에 앉아보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단한 결심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출근하지 않는 긴 하루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모두가 바라던 퇴사의 후련함은 딱 '잠'까지다. 아침에 쫓기지 않고 푹 잘 수 있다는 자유로움. 더 이상 ‘저 아파서 오늘 휴무...’하고 카톡을 매만질 일 없이 잘 수 있다. 아무런 구속 없는 그런 아침이 일주일 이상 반복되면 다가오는 하루는 금세 막연해진다. 다음날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워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밤이 되면 하루가 허무해 괜히 인터넷을 헤매다 늦게 잠들고, 그 시간만큼 아침은 날아가 버렸다. 잠으로 도망치는 아침이 반복되면 무기력해졌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울증 초기 증상이 그와 비슷하다고 하더라. 일터의 구속력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하루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연습이 필요했다.      


하루를 나의 의지로 긴장감 있게 시작하고 마감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루를 그날의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 컨디션 좋은 날과 좋지 않은 날 정도로 구분될 뿐이었다. 예술가나 작가는 영감이 왔을 때 작업한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기분에 따라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것이다. 술에 취해 붓을 놀리면 대작이 되는 <취화선>이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작가들처럼 밤이면 파티와 유흥을 즐기고, 즉흥적이고 불같은 사랑을 찾는 삶. 광기와 일탈이 창작의 조건처럼 생각되기 쉽다.      


고흐는 우울증과 광기로 알려져 있지만 규칙적인 일과를 엄격하게 수행한 예술가였다. 고흐는 아침 8시에 이젤을 들고나가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다가 정확히 오후 6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고흐는 청교도 집안이었기에 수행하듯 금욕적으로 창작에 임했다. 늦게 그림을 시작하고 8년 동안 222점을 그려낸 놀라운 작업량은 그의 금욕적인 성실함 덕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써가는 노하우는 ‘지속력’뿐이라 하였다. 매일 달리기를 빼먹지 않고, 다섯 시간은 소설을 쓰는 규칙적인 일과가 그의 지속력이었다. 카프카는 보험국 공무원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글을 썼고, 매일 1km 정도 강에서 수영을 하였다. 그날의 기복과 상관없이 의자에 앉아 노동하듯 작업한 작가들이다.      




나의 몸에도 오전과 오후 일과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학습되어 온 관성이 남아 있었다. 학교부터 직장까지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그곳의 일과를 준수한 삶. 그런 성실함 때문인지 창의적인 생각이나 기획에는 별로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작업의 조건에 성실함을 꼽는 말들을 하나하나 믿어가며, 하루하루를 창작과 함께 일궈가기 시작했다.      


하루와 한 주 그리고 한 달, 작업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림을 그리면 시간이 제법 잘 갔다. 며칠 꼬박 그려서 한 점 완성하면 맑은 성취감으로 마음이 찰랑거렸다. 막연한 하루가 차츰 영롱한 시간들로 채워졌고, 시간의 주도권이 다시 나에게 넘어온 자유로움이 좋았다. 팀을 꾸려 예술활동도 해보았지만 나는 정확히 ‘그림’ 그리는 시간을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살던 원룸을 벗어나 방이 두 개인 집을 구해, 방 하나에 이젤과 큰 모니터를 들여 작업실을 꾸렸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일상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방 하나를 두고 출근과 퇴근을 의식하며 움직였다. 작가로 살아보는 연습 같은 하루하루가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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