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요한 지혜들은 학교보다 길 위에서 배웠다. '좋다'하고 바라본 장면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타인이 묵묵히 일궈낸 삶의 장면은 사진 몇 장과, 몇 일간의 호기심만으로 내 삶에 남지 않았다. 습관으로 스며들기까지 조금 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아침을 균일하게 시작하고, 뜨겁게 일하며, 해질 무렵 밭에 물을 주며 하루를 마감하던 장면은 아름다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를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6-7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저녁 먹고 한 시간은 달리기를 한다. 하루와 그다음 하루, 어느새 주말이 되면 한주를 완주하였음이 기쁘다. 한주를 스스로의 의지로 완주한 성취감은, 매일 아침의 게으름과 변덕스러운 기분에 좌우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 아침에 요가를 하고 커피를 내리는 습관이, 이제는 작업을 하기 위한 스위치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왠지 책상에 앉을 기분이 들지 않는 달까. 덤덤히 책상에 앉도록 몸에 익은 습관이, 하루를 회전시키는 나만의 전원 버튼이다.
처음 요가를 해본 곳은 태국의 펀펀(Pun Pun) 공동체이다. 펀펀에서는 농사를 짓고 토종씨앗을 보존하는 운동을 한다. 씨앗이 필요한 농가에 무상으로 보내주며, 씨앗 기르는 방법을 편지로 함께 보낸다.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기존과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해 매년 펀펀에 모여든다. 머무는 동안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밭을 일구거나 흙집을 함께 짓는다. 어떤 삶을 살아갈 건지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질문하는 태국의 젊은이들이 펀펀을 찾는다.
머무는 동안 명상과 요가, 나뭇잎으로 샴푸를 만들기, 바나나 효소 만들기와 예방의학 등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듣고 배운 지식은 다 까먹었지만, 몸으로 확실히 배워 온 건 요가였다. 흙으로 지은 마을 강당에는 문과 창문이 없다. 하늘이 잘 보이는 이곳에서 아침마다 요가를 배웠다. 처음 하는 남자들 입에서는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방귀도 나온다. 태국어를 다 알아듣지 못해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들숨과 날숨의 신호, 긴장하는 동작이 지나면 반드시 이완이 따라오는 흐름이다. 밤 사이 굳어 있던 몸의 구석구석을 무리하지 않게 깨우는 지혜였다.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금세 땀이 나고 몸도 적절히 예열되었다. 마침내 마치는가 싶으면 꼭 바닥에 눕는 시간을 주었다. 가만히 누우면 흙집의 창을 통해 하늘이 보였다. 바삭하고 청명한 태국의 하늘이 참 좋았다.
펀펀을 떠나올 때 그곳의 씨앗을 챙겨 와 옥상에 심었었다. 일 년간 태국 상추를 키워 샐러드로 먹었다. 더 많은 것들을 담아오고 싶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침의 요가뿐이다. 돌아온 작은 원룸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동작만 몇 개 기억날 뿐 흐름을 이어갈 수 없었다. 동네 요가원은 다이어트 중심이어서 하는 수 없이 유튜브를 찾아 더듬더듬 따라 했다. 발리 어딘가의 요가 영상이 느릿느릿 펀펀의 호흡과 비슷했다. 두세 개의 영상을 두 달 정도 따라 하였다. 점점 화면 없이 소리만 듣고 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요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의자에 오래 앉는 일은 등과 허리 쪽에 통증이 생긴다. 한 자세로 일하는 직업은 몸이 굳어가며 잔병을 얻는다고 하더라. 작업을 많이 할수록 허리와 목, 어깨가 차례대로 아픔을 호소했다. 그림을 그리며 얻는 직업병이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도 그때뿐이었다. 더듬더듬 시작한 요가는 작업으로 생긴 통증을 해결해 주었다. 특히 허리를 반대로 쭉 펴며 일어나는 '태양 예배 자세'는 무척 시원했다. 의자에서 자세를 고정하느라 뻗뻗해진 근육들을 펴주는 동작이 요가에는 많았다. 이제는 요가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경직된 허리 근육을 펴고, 잠을 깨우기 위해서 꼭 해야 한다. 아침 요가의 마무리에 가만히 누워 창밖의 하늘을 본다. 태국에서 느꼈던 하늘과 다르지만 그때의 청명함이 스친다.
요가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마치면 커피를 내린다. 직장에 다닐 때는 카페에서 샷이 진하게 들어간 카푸치노를 주문했었다. 하지만 커피 로스팅하는 친구 윤상을 만나면서, 직접 내려마시는 핸드드립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윤상은 세운상가 상인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친구였다. 지금은 을지로 골목에서 커피를 내리는 <작은물>이란 공간을 운영 중이다. <작은물>에는 음악 하는 청춘들이 스멀스멀 모여들어서, 이전 홍대 클럽처럼 자신만의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의 멋진 공간이 되었다.
윤상이 핸드드립 하는 과정을 처음 봤을 때 다도 같았다. 그가 한창 자신만의 커피를 연구하던 때였어서, 사무실에 있으면 맛있는 커피를 얻어마실 수 있었다. 드립퍼와 유리서버, 그리고 잔과 저울 등 많은 도구들이 그의 가방에서 나왔다. 커피가 머무를 용기들에 차례로 뜨거운 물을 부어 따뜻하게 하였다. 볶아온 원두의 그람수와 물의 온도를 정확히 재었고, 물을 가운데부터 주변으로 천천히 나눠 부으면 커피가 추출되었다.
과정마다 커피 향이 공간에 번져갔고, 향을 맡고 받아 든 커피는 맛이 풍요로웠다. 원두를 손으로 갈 때 퍼지는 향과, 커피가루가 물을 머금으며 머핀처럼 부풀어 오르는 모습, 커피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경건해졌다.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해 샷으로 빠르게 내린 커피보다, 과정을 음미하면 커피도 더 맑게 몸에 스며오는 듯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정중히 대접하는 기분이 좋았다. 윤상에게 물어 간단한 도구를 갖추고 커피를 내려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번 강렬한 커피의 만남이 강릉에서 있었다. 강릉의 ‘안프로게스트하우스’라는 딱히 홍보를 하지 않는 숙소이자, 덕분에 아는 사람만 조용히 머물다 가는 신묘한 장소이다. 주인장 안프로는 여름이면 정동진 영화제 운영으로 겨울이면 산불진압요원으로 바쁘다. 처음 찾아간 계절이 겨울이어서 그가 애정 하는 화목난로와 고구마가 익고 있었다. 군 고구마의 탄 향과 커피도 콩을 태 운향이니 두향의 궁합이 절묘했다. 고구마와 커피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처음 알았다.
신중한 다도 같은 핸드드립은 저리 비켜라. 안 프로의 로스팅과 핸드드립은 공간의 질감처럼 짙고 강렬했다. ‘아 커피는 이렇게 마셔야!’. 안프로의 커피를 거치며 나에게 맞는 커피 맛과 농도가 생겼다. 이후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가 사 먹는 것보다 더 입맛에 맞았다. 지금은 융드립으로 커피의 유분까지 내린 고소한 커피에 빠져있다. 수동 그라인더로 삐걱삐걱 원두를 갈아내고, 커피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더 총명해지는 느낌이다. 커피를 잔에 따르고 책상에 앉으면, '자! 오늘도 잘해보자' 영롱한 기운도 시작된다. 머릿속 어딘가 있을 스위치를 탁 켜고 또렷한 긴장이 생긴다.
요가와 커피, 그 외에 더 많이 닮고 싶은 장면들이 많았다. 자연의 시간에 따라 분주해지고, 해가 지면 고요해지는 하루들. 언젠가 더 자연 가까이에서 작업하고 싶지만, 아직은 네모의 도시 안에 머물고 있다. 공원에서 드로잉을 할 때 마음에도 바람이 지날 때가 있다. 마음을 저릿하게 하는 감각들은, 길 위에서 닮고 싶었던 삶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일궈온 아름다운 삶의 색깔이 나에게도 묻어 나오길 바랬다.
지금 나의 하루는 다 누군가에게 조금씩 묻어오고 버무려지면서 자리 잡은 습관들이다. 무사한 하루, 매일 아침 요가의 가장 마무리에 슬쩍 하늘을 보고 꾸벅 절을 한다. ‘오늘도 무사한 하루가 되게 살펴주소서’ 종교는 없지만 나만의 짧은 기도다.
매일 허리를 펴고 바삭한 하늘을 기대해보는 요가와, 맑은 긴장을 선사하는 커피를 마시며, 오늘도 또 좋은 작업을 해보리라 나만의 밭에 나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