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영 Sep 23. 2020

작가의 세계로 들어서다.


작가라는 직업, 정체성은 크게 염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림만 그리던 몇 년 동안 나를 가장 난감하게 만드는 순간은 자기소개였다. '저 그림 그려요'하고 말하면 취미 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와~ 그러시구나. 멋지네요. 그래서 무슨 일 하세요?"

정확히 뭘 해서 돈을 버는지 재차 질문이 왔다. 직업이 아닌 일상을 설명할수록 뭔가 궁색해져서 말끝을 흐리게 되었다. 직장이나 소속으로 대변되던 정체성을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직업을 얼버무린 시간도 4년이 되면서, 그 정도의 태도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4년 가을, <힐스 Hills>를 알게 되었다. 힐스란 한국일러스트레이션 학교(Hanguk Illustration School)의 줄임말이자 단어 그대로 '언덕'이란 의미도 된다. 힐스는 미대 진학이나 유학 등을 이리저리 알아보던 시기에 알게 된 이름이었다. 그림을 그릴수록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졌다. 단기 강좌나 워크숍은 대체로 친절했지만, 친절함으로 그림이 나아지진 않았다. 그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홈페이지가 마땅히 없어서 문의 메일을 보내자 '일단 만나자'는 답변을 받았다. 반신반의하며 힐스를 찾아가니 메일을 준 권혁수 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 남짓 그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작가였다. 힐스를 설명하는 그의 대화 속 주인공은 작가였다. 스스로 작가로 인지한 이후의 삶,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학습하는 공동체, 내가 이해한 힐스의 첫인상이었다. 작가, 작가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나갔다. 2017년을 앞두고 힐스에 입학하였다. 마침, 작품집 출판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겨울이었다. 혼자 그려오던 그림들은 책으로 매듭지었고, 새로운 그림이 시작되는 문 앞에 서있었다. 설레었다. 매듭과 시작이 자연스레 포개졌다. 힐스에서의 첫 시간, 권혁수 작가는 말했다.


“여러분,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림으로 세상에 빛을 비춰주는 행위입니다.”


그의 말은 낯설었다.

일러스트는 예쁜고 귀여운 그림, 혹은 책의 삽화 정도로 여기던 나에게 낯선 말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Illustration의 단어 속 철자 lus는, 럭스 lux 광원이나 빛이 어원이며, 일러스트레이션은 현실의 어딘가 주목해야 하는 곳, 빛이 필요한 곳에 그림으로 조명을 비추어주는 실천적 행동입니다.”


여전히 낯선 단어들 안에 설레임이 일었다. 내가 찾고 싶었던 그림에 맞는 적확한 언어를 찾은 듯했다. 개념적으로 어려워지는 미술관의 오브제가 아니라, 이웃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림. 실천의 언어. 오늘, 여기, 이곳에서 삶과 함께 존재하는 그림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이 새롭게 다가왔다. 반가운 마음에 노트에 꾹꾹 받아 적었다.      



‘빛을 비춰주는 그림’


나의 그림은 길 위에서 그려졌다. 길 위에는 멋진 자연과 풍광이 있지만, 인간에게 드리워진 그늘도 있다. 도시의 구석에는 잘 보이지 않도록 밀려난 삶이 존재한다. 길이 깨끗하고 화려할수록 뒷켠에는 그늘 속에 고립된 이들이 존재했다. 어둠 속 타인에 대한 감각은 뉴스에서 접하는 어렴풋한 잔상뿐이다. 타인의 비극은 자극적인 뉴스로 회자되다 쉬이 잊혀졌다.

나 역시 모르고 지내던 세상의 그늘을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억울한 사연과 가난한 사연 혹은 고립 조차 길어져 악취로 이웃에 알려지던 이야기까지, 몇 년간 밀도 높게 목격하였다. 때로는 당사자로서, 활동가로서, 예술가로서 목격하고 어찌할 줄 몰라 그림으로 표현했다. 세상의 어둠을 그리면서 생각한 건 밝음이었다. 한동안 '명랑'을 내걸었지만 끝내 그 말로 이어지는 무언가를 찾지는 못하였다. 어떤 그림을 지향할지 헤매다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일러스트레이션은 반가운 언어였다.


곱씹을수록 멋진 뜻이지만 이 장르에도 혼란은 존재했다. 그림책이 성장하던 몇 년 동안은 힐스를 졸업하면 그림책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림책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좋은 미디어가 되어주었다. 작지만 책 한 권을 그림으로 펼쳐낼 수 있는 하나의 세계이다. 힐스의 졸업 전시회에서 출판사와 바로 계약할 정도였으니 배우는 사람도 지도하는 사람도 그림책은 하나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5년을 못 넘기고 급격히 침체되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어린이가 읽는 책 이상의 장르로 자리매김하지 못하였다.


한쪽에서는 Facebook, Instagram 등의 SNS로 이미지를 소비하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였다. 대중이 그림을 향유하는 문화도 그에 따라 변하였다. 고가의 원본 미술보다 복제된 굳즈나 독립출판물이 소비되었다. 작가가 그림을 펼쳐나가는 길이 다양해졌고 혼란도 함께 였다. 나의 시선도 어느새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디자인과 출판 등 새로운 창작의 세계로 넘어가 있었다. 새로운 분야에서 멋지게 이미지를 펼쳐낸 작가와 디자인 팀을 알게 되고, 내 SNS 타임라인은 그들의 이미지로 채워졌다. 힐스를 만나면서 하나의 장르, 혹은 업계라고 칭하게 되는 씬 Scene에 접속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창작자들이 각자의 이미지를 쏟아내는 본격적인 세계였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공통적인 고민은 역시 ‘어떻게 자신의 그림을 찾아나갈 것인가?’이다. 미대를 거쳐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나, 그림이 서툰 나 같은 사람이나 겪어내야 하는 고민과 혼란의 몫은 동일했다. 자신의 스타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방향의 질문이 필요했다. 인터넷에 무수한 레퍼런스와 그림이 펼쳐져 있어도, 자신의 그림은 그런 곳에 있지 않았다. 나의 언어, 나의 목소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내 것’이라는 밑천은 들여다볼수록 이게 내 것인지, 언제 어떻게 내 안에 들어와 있는지 스스로도 알기 어려웠다. 자신의 그림을 찾아가는 이 혼란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책을 내고 힐스에 발을 디딘 이후부터 작가의 삶을 더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나의 작품집을 건네면 상대방의 입에서 작가란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말이 빙빙 돌지 않고 구체적인 대화로 바로 이어졌다. 작가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지하고 그 삶으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직업의 세계에서 이제는 어떤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인 질문으로 걸어가야 했다.

이전 04화 하루를 회전시키는 기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