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뜨거운 여름날, 선크림을 바르고 나면 들숨을 타고 옅은 화장품 냄새가 난다. 후덥 한 공기와 옅게 풍기는 썬크림 향은 내가 여름을 실감하는 냄새이다. 이 냄새가 이끄는 기억은 20대 중반의 긴 여름으로 이어진다. 바삭한 여름이 긴 나라 호주, 축축한 여름이 긴 나라 뉴질랜드에 머물며 발랐던 선크림 향은 그때의 기억을 짙게 머금고 있다. 돌이켜보면 전부 서툰 열정으로 채워진 20대지만, 지금까지도 후회가 적은 기억은 워킹홀리데이다. 호주에서 7개월, 뉴질랜드에서 4개월, 삶에서 가장 긴 해외 체류 시간이자 가장 주체적으로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들고 주방 뒤편의 잡일을 찾아다녔고, 매주 다가오는 집세와 세 끼 식사와 생활이 유지되도록 살림을 꾸렸다. 세어보니 일 년 남짓 머물면서도 여덟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짐을 펼쳐놓았다가 다시 꾸려 떠날 때 막연함은 늘 동일했다. 문을 열고 짐을 풀고 장을 보고, 주방에서 뭔가를 해 먹고, 빨래를 널고, 하나씩 하나씩 생활이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를 느꼈다. 안도 뒤에 자유도 있었다. 이전에는 기존의 일상을 벗어난 일탈이 자유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유는 일탈이 아니라 일상의 중심이 생겼을 때, 하루가 무사히 반복되어야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호주에서는 배우고 싶은 어학원에 가려고 돈을 모았다. 알바를 마치고 동전을 모아 진한 카푸치노를 사서 강이나 공원에서 책을 보았다. 와인 생산국답게 값싸고 질 좋은 와인도 자주 마시게 되었다. 영어에 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시작된 여정이었지만, 삶에서 누려야 할 낭만에 대해 알게 해주었다.
가장 만족스러운 일상이 꾸려진 곳은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처치에서였다. 당시 뉴질랜드 환율이 1달러당 650원 가까이 떨어져서, 호주에서 번 돈을 아껴 쓰면 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운이 좋게도 하숙을 구하는 할머니와 만나며, 한국에 오기까지 이사 걱정 없이 살았다. 낡은 책상과 침대가 있는 2층에 살았고, 할머니는 음식과 빨래를 챙겨주셨다. 매일 샌드위치를 가방에 넣고 자전거로 학교에 오고 갔다. 동분서주했던 호주의 생활과 다르게 한 곳에 길게 머무는 안정된 일상이었다. 안정된 생활 속에서 배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뒷마당이 아름다운 작은 어학원에서 영국 케임브릿지(Cambridge) 코스를 등록하였다. 한국에서는 낯선 자격증이지만 영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평이 많았다. 흰색 수염으로 젠틀한 노년의 교사는 정중하게 언어를 가르쳐주었다. 한국에서는 도통 못 알아먹겠던 문법이 그의 설명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해되었다. 많이 말하고, 많이 읽었다. 집에 와서는 영문 소설을 읽고, 다시 문법책을 뒤적이던 과정이 쌓이면서 언어에 푹 빠졌다.
온종일 영어를 많이 사용하면 머리가 뜨거워졌다. 뜨겁게 몰입하고 나면 알아듣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한 단계씩 확장되었다. 언어도 즐거운 배움일 수 있구나! 성장하고 있다는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집과 마을의 거리, 배움이 있는 학교, 대화할 수 있는 이웃과 친구들. 주말이면 친구들과 교외로 소풍이나 짧은 여행도 떠났다. 뉴질랜드의 큰 자연은 어디를 가도 신비로웠다. 삶의 균형이 잘 버무려진 행복하던 일상이었다.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집을 알아볼 때 워킹홀리데이 생활은 기준점이 되었다. 적은 돈을 벌어도 살림을 유지할 수 있는 부엌, 배움에 몰입할 수 있는 방, 숲이나 자연과 가까운 위치. 번잡한 지하철역에서 떨어져 있어서, 하루를 온전히 생활해 볼 수 있는 장소를 원했다. 서울숲이 지금처럼 변하기 전, 숲과 가까운 허름한 주택에서 삼 년 동안 이 생활을 펼쳐 볼 수 있었다.
작지만 방 두 개와 주방으로 구획되어 있어서 좋았다. 하나를 온전히 작업실로 쓸 수 있었다. 방 하나를 두고 작업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걸 의식하며 살았다. 작업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옷을 갈아입고 출근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아침에는 요가를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식사는 직접 차려 먹도록 부엌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다. 밥을 사 먹으면 효율적이지만, 부엌에 익숙해지니 오히려 차려 먹는 게 경제적이고 맛있었다. (미술과 요리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규칙적이되 몸에 자연스러운 일과를 유지하려 했다.
뜨거운 햇볓이 쏟아지고 얼굴에서 선크림 냄새가 풍겨오면 워킹홀리데이의 긴 여름이 포개졌다. 아름다운 자연과 가까이 살며, 자전거로 오고 가는 속도 안에서 하루를 충만히 보내는 감각이 좋았다. 꽃이 피고 잎이 돋는 숲을 부지런히 나가서 보고 많이 그렸다. 그림을 알아가는 과정도 언어를 배우는 과정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많이 보고 많이 그려야 하고, 모르는 부분은 문법책을 보듯, 색채론, 해부학, 명암 등의 지식을 찾아서 공부하게 되었다. 느리지만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었고, 드물게 찾아오는 그 성취감 때문일지 점점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림도 영어처럼 하나의 언어로 다가왔다.
긴 안목으로 배워나갈 수 있는 언어를 만난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얼굴에 번지는 선크림 향은 계속해서 뜨거운 여름을, 그때의 배움과 낭만을 잃지 말라며 은은히 풍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