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로프 팔메 암살 수사 공식 종결
어제부터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릿속은 뇌가 각 부분별로 지방자치라도 하는지 갖가지 생각의 회로를 돌리고 있어 정작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울리는 전화기를 보면서도 받을 생각을 못했다.
올로프 팔메의 암살 사건이 종결되었다. 1986년 2월 28일 금요일 늦은 밤, 당시 스웨덴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가 스톡홀름 한 복판에서 괴한의 총에 암살당했다. 암살의 배후로 극우주의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보국, 미국 CIA, 스웨덴 무기회사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쓴 작가이자 탐사매체 '엑스포'의 편집장이었던 스티그 라르손은 오랜 시간 단독으로 조사한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마지막 용의자로 남겼고, 아프리카 로데시아에서 군생활을 했던 전직 용병 한 사람은 CIA에게 팔메 암살 지시를 받았다고 고백했으며, 스웨덴의 유명 가문의 누군가는 미제 사건을 주로 다루는 신문기자에게 무기회사가 배후에 있다고 비밀편지를 보냈다.
2017년 담당 수사관 대부분이 정년퇴직으로 수사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팀장이 사건을 이어받았다. 그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 수사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그때까지 무기한으로 철저히 조사하겠다 했다. 올 초 무언가를 찾은 듯 올해 상반기 안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난 막연히 6월 30일에 발표를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검찰에서 오늘 발표한다고. 그 이후부터 옴싹 달싹을 못하고 옛날 자료를 뒤적이다 생각에 빠졌다 멍하니 있다가 하기를 반복 중이었다.
솔직히 별다른 내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사건의 실체를 드러낼 증거라고 해봐야 여태껏 나오지 않은 결정적 증언이나 암살에 사용된 무기(매그넘 357)일 텐데 사건 발생 34년이 지난 지금 두 가지 모두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얼마 전 어떤 경로로 총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게 정말 범인이 사용한 총인지, DNA라도 남아 있을지, 또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싶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범인이 누구인지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팔메의 죽음을 매듭 지어야 할 때가 온 것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스티그 엥스트룀 Stig Engström. 수사를 담당한 검사장이 지목한 범인이다. 공범도 배후세력도 없는 단독범. 검사장은 엥스트룀이 이미 사망했으므로 기소할 수 없으며 추가 수사를 이어갈 수 없어 사건을 종결한다고 밝혔다.
스티그 엥스트룀은 스칸디아맨 Skadiamannen이라 불리던 남자로 초기에 주요 목격자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사건 현장 옆 보험회사인 스칸디아 직원으로 그날 밤늦게까지 일하다 퇴근길에 팔메의 암살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이리저리 말을 바꿔 수사에 혼란을 주었고 이후에 경찰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수사에서 배제했다. 사건 현장을 맴도는 그의 수상쩍은 태도에 더해 그가 팔메가 속한 사민당과 대척점에 있는 온건당 지지자였고 과거 사격클럽에 속했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용의자로 보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가 범인이라 여기지 않았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범인이 큰 키에 무릎까지 오는 헐렁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스티그 엥스트룀은 땅딸막한 몸집에 안경을 썼다. 내 기억에 당시 경찰의 수사보고서에 등장한 목격자 중에 범인이 안경을 썼다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엥스트룀은 자존감이 낮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성격의 사람으로 언론의 관심을 좇아 떠버리기 좋아했다. 팔메 사건 이후 술을 많이 마셨고 200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처음 수사관이 스티그 엥스트룀을 범인으로 지목하자마자 케네디의 암살범으로 지목됐던 리 하비 오스왈드가 떠올랐다. 배후세력도 공범도 없는 단독범. 친구가 별로 없는 외로운 남자. 두 시간이 넘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막연히 '언젠가 이런 날이 오겠지...' 했던, 끝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팔메의 죽음은 스웨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혹자는 팔메의 암살은 스웨덴 민주주의를 향한 용서할 수 없는 공격이라고 했다. 지난 34년 스웨덴 전체에 남긴 트라우마 - 그 이후 거의 모든 스웨덴 문학에 등장하는 팔메의 죽음. 팔메를 열렬히 싫어했던 사람조차도 팔메의 죽음을 이야기하면 조용해진다 - 를 이제는 봉합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제는 팔메를 보내줘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팔메와 팔메의 가족을 위해서, 스웨덴을 위해서 말이다.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전담 수사팀이 사라진다는 것 말고는. 기자 회견 동안 안쓰러울만치 손을 떨었던 검사장의 긴 하루도 이제 다 끝났다. 공식적인 수사 결과는 기록으로 남을 테고 앞으로 팔메의 암살을 이야기할 때면 스티그 엥스트룀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겠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죽은 자에 대한 기소 없음으로 마무리한 수사는 여전히 다양한 의혹이 뻗어나갈 길을 열어 놓았다. 사람들은 변함없이 팔메를 추억하고 스베아바겐을 걷다 멈춰 서고 아돌프 프레드릭스 교회 정원 팔메 묘지에 빨간 장미를 둘 것이다. 내가 스톡홀름에 갈 때마다 그러듯.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내 삶을 흔들어놓은 사람. 누구보다 빛나는 삶을 살았지만 죽음의 그늘에 너무 오래 갇혀있었던 사람. 때론 진실보다 중요한 게 있는지도.
올로프 팔메, 이제는 당신을 놓아드립니다. 당신의 죽음이 아닌 당신의 삶으로 기억하겠습니다.
R.I.P. Olof Palme (1927-1986)
올로프 팔메
총리 임기(1969~1976, 1982~1986)
왕정국가에서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헌법 개정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개혁
다당제 확립, 의제별 연정 시도
고용보장 확대
실업급여, 병가수당 등 확대
노동조합 권한 확대
부부별산제와 가족단위 과세에서 개인과세로 개혁
복지 단위 역시 가족에서 개인으로
공공주택 100만 호 공급(당시 인구 800만)
유급부모휴가
여성 근로 장려
교육개혁(대학 등록금 폐지)
공공의료 강화
공공 치과 보험 도입
공공 어린이집 확대
아동수당 확대
지자체 보육시설 지원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아동권리위원회 조직. 실태조사와 대책마련에 나섬
장애인 정책 정비
시민 교육 강화(스터디서클 민주주의)
금융소득 과세
소득세 인상
사회보장 확대
노인 복지 강화
노동연금 수급자격 확대
여성 장관 30%
임노동자기금 부분적 실험
화석 에너지 비중 줄임
미소 양강구도에 대항해 제3세계 국가 연대
적극적 중립 외교
아프리카 인종 분리정책 비판, ANC 지원
팔레스타인 지원
베트남 반전 운동 지원
미국-소련 비판
동유럽 공산주의 비판
남미 독재 정부 비판
정치적 망명 및 분쟁지역 이민 수용
흡수동화주의 대신 다문화주의 채택
핵 확산 방지
이란 이라크 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