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 폭행으로 4세 여아 사망 후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 시작
최근 학대에 시달리다 여행 가방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9살 어린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친부와 친부의 동거녀였습니다. 아이는 사망 한 달 전인 5월 5일 어린이날에도 병원에 왔습니다. 아이의 온몸에 폭행의 흔적이 있었고 병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부모는 채벌의 흔적이라고 답했고 이후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문득 스웨덴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린이에 대한 체벌이 법으로 금지된 스웨덴이었다면, 아이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는 양육권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뿐 아니라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은 1918년 (3.1 운동이 있기 한 해 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체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도입되었고 단계적으로 범위를 넓혀 1958년 모든 학교에서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1971년, 4살짜리 여자아이가 계부의 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온 나라가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고,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오랜 토론 끝에 정부가 아동권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 조사하고 대안 모색에 나섰습니다. 1978년 정부는 가정 내 체벌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의회에 체벌 금지 입법안을 냈습니다. 그 법안이 바로 1979년 세계 최초로 시행된 가정 내 체벌금지법입니다.
1971년 사건이 벌어졌고 법안이 제정된 것은 1979년입니다. 우리는 결과에 주목해 그 사이 그 사회와 정부가 어떤 노력을 벌였는지는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당시만해도 아이를 때리지 않고 어떻게 말을 듣게 하냐는 부모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기위해 법의 취지와 체벌 없이 아이를 양육하는 법 등에 대한 대대적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지자체마다 체벌없이 자녀를 훈육하는 법 등의 강좌와 부모 학교 비슷한 상담 과정도 개설했습니다. 온가족이 먹는 우유곽에 체벌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에 대한 만화를 실었고, 유치원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법이 도입된 지 40여 년 지난 지금 스웨덴의 사회적 분위기 상 어린이에게 폭력은 물론 폭언을 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로 여깁니다.
모든 범죄는 나쁘지만 특히 약자에 대한 범죄,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운 어린이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는 특히나 악한 범죄입니다. 요즘 들어 친족에 의한 아동학대가 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요.
주말에 읽었던 추리소설 <레오나: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의 범인은 아동학대 피해자입니다. 그는 여섯 살 무렵부터 약물중독인 엄마를 위해 직접 마약을 샀고 엄마가 금단현상으로 괴로워하면 직접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11살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돌봄 가정에서 자라면서 학교에 빠지고 술을 마시고 경찰서를 드나들게 됩니다.
그는 이웃, 학교, 사회복지센터, 경찰 모두 자신을 외면했다고 합니다. 그의 주변에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누구도 어린아이인 자신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사회를 향해 분노하며 범죄를 저지른 이유입니다. 물론 불우한 과거가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이런 동기와 울분이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혹시라도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예방에 힘을 기울일 수는 있겠지요.
범죄자가 아직 어렸을 당시 학교 양호사가 말하길, 그 아이는 너무 말랐었고 옷은 다 해져있었고 한겨울에도 따뜻한 외투가 없다는 말을 사회복지센터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복지센터에서 방문했지만 아이의 엄마는 약물중독으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알레르기가 있다며 거짓말을 했고 복지사는 그 말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범인은 주변 어른들, 선생님, 친구의 부모님, 이웃 모두 자신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면서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착한 척 하지만 다들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어린이의 불행을 발견하는데 국가가 태만했다고 주장합니다.
북유럽에서는 아이가 자랄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부모에게서 아이를 데려갑니다. 주변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복지사가 몇 차례 확인을 하러 방문하고 이야기를 해보고 아이가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닐 경우, 폭력은 말할 것도 없는 이유이고, 부모가 불안하거나, 다툼이 잦거나, 물질적으로 너무 어려워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라도 아이를 데려와 보호가정으로 보냅니다. 부모의 접견 권한도 복지사의 판단에 큰 영향을 받아 결정되고, 심지어 부모가 아이를 만날 때 아이의 대변인 격으로 복지사의 관찰 아래서만 만나야 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현재 스웨덴 총리인 스테판 뢰뷔옌도 보호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물론 좋은 시설이나 가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나 예외와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오히려 부모와 떨어져 방황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 역시 국가에 의해 친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진행하는 일도 많습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 대한민국 교육부 슬로건인데요, 사실 이 말은 - Alla barn är allas barn! 스웨덴의 사민당에서 20세기 초 국민의 집을 이야기하며 아동정책과 가족 복지제도를 설계할 때 내걸었던 구호입니다. 어른이나 보호자가 아닌 아이를 주체로 보고 ‘아이의 이익을 위해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웨덴이 정책은 아이를 아이가 아닌 한 개인으로 보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번 코로나 때 스웨덴이 휴교를 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 담당자 인터뷰를 보면 학교에 오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이 위험한 아이도 있다고 하더군요. 가정 폭력에 노출되거나,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요. 일단 매일 학교에 오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1979년 스웨덴이 어린이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이후 곧바로 이웃 북유럽에서 같은 법을 도입했고 지금까지 전 세계 67개국이 체벌금지법을 도입했습니다. 일본도 지난해 체벌금지법을 채택해 올해인 2020년 4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폭력으로 고통받고 목숨까지 잃는 사건이 이렇게나 많이 발생하는데 왜 우리 정치권은 이렇게나 미지근하게 대처할까요? 한국에는 아동학대방지 특별법과 아동훈육권이 공존합니다. 내 아이 내가 혼내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공공기관의 적극적 개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외딴곳에 부모님이 없는 어린이가 혼자 산다... 고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가엽고 외롭고 어쩌면 범죄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먼저 드시나요? 사실 삐삐 롱스타킹도 부모님 없이 혼자 사는 어린이 이야기였습니다.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동화를 통해 어린이의 인권을 주장했고 스웨덴이 세계 최초로 체벌금지법을 시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환경에 주눅 들지 않고 자기와 다른 환경의 친구든 친구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경찰이든 누구에게든지 자기주장을 또박또박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어린이 그리고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요즘은 어린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미디어에 고스란히 노출되다 보니 어린 나이에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을 거스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한 주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동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스웨덴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법률 6장 첫 구절입니다.
어린이는 보살핌, 안전, 좋은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각자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받아야 하며 체벌을 포함해 어떤 모욕적인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어린이 친구들,
여러분의 권리를 지키면서 이번 한 주 씩씩하게 보내세요! Hej dååååå!
짜잔, 반복학습은 기억력을 두 배로 올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