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피해자와 여성 피해자의 차이점
한국스칸디나비아학회의 지원으로 ‘노르딕 누아르 속 여성의 역할 변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고 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베라는 남자> 등 북유럽 문학이 근 10여년 인기인데 사실 그보다 먼저 팬덤을 형성한 것은 범죄소설이었다. 뉴욕이나 런던의 대형 서점에 ‘노르딕 누아르’ 또는 ‘스칸디나비안 누아르’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연구자인 줄리언 시먼스는 범죄소설은 “죄는 분명하되 범죄는 분명하지 않은 예술 작품인 반면, 추리소설은 그 반대”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딕 누아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북유럽 범죄소설에는 기존 추리소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사건이 아닌 인물 중심 구조다. 평범한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개인기가 아닌 팀워크로 수사를 진행한다. 셜롬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 같은 천재 탐정이 현장을 훑어보고 주변 사람과 몇 마디 나눈 후 “범인은 이 안에 있어!” 하며 단숨에 사건을 해결하는 과거 추리소설과 달리, 북유럽 범죄소설은 나름의 한계와 고충이 있는 형사, 제도의 한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정과 심리를 복합적으로 다루며 사건을 서술한다.
노르딕 누아르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사 연구 자료로 쓰일 정도로 시대를 충실히 반영한다는 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연도, 현장에 대한 묘사 등의 정보를 작가가 꼼꼼히 조사하고 때로 의도적으로 사회를 고발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거울처럼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 노르딕 누아르를 여타 추리소설과 구분 짓는 지점이다.
북유럽연구자이자 범죄소설 애호가인지라 북유럽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바로 사다 읽는 편이다. 1965년 출간돼 노르딕 누아르의 시초로 불리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부터 최근작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읽다 보니 언제부턴가 소설 속에서 시대변화를 감지하게 됐다. ‘하페즈’ ‘사미르’ 등 아랍계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든지, 검사나 형사 중에 여성의 수가 늘었다든지, 남자가 집에 돌아오면 주로 설거지를 하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말이다.
그러고 보니 1990년대 이전 작품에는 여자 형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범죄소설 속 여성은 그저 피해자였다. 시신으로 등장하거나 증언을 꺼리는 추가 피해자 또는 목격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문학계를 통틀어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학대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가해자와 사회 전체를 향해 복수극을 펼치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다. 출간 이후 10년간 8000만권이 넘게 팔렸다. 인구 1000만 스웨덴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350만명이라니 인구의 35%가 본 셈이다.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등장인물 중에 새로운 유형의 여성이 부쩍 늘었다. 소설 속에서야 새로운 유형이지만 그간 동료나 주변 인물로도 나오지 않던 여성이 평범한 역할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뿐이다.
북유럽 5개국은 여성과 관련된 모든 지표에서 수위를 달린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낮은 성별 임금격차 모두 상위권이며, 출산율도 높다. 그렇다면 북유럽 범죄소설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달라졌을까? 이 질문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1992년부터 2020년까지 출판된 북유럽 범죄소설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해결자의 성별, 피해자와 가해자의 수와 성비를 통계로 내고 인물 묘사를 분석했다. 작품 선택에 편향성을 배제하기 위해 매년 가장 뛰어난 북유럽 범죄소설에 주는 유리열쇠상 수상작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지점을 확인하기도 했고,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해자의 수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분석 대상작 15편 중에 여성 가해자는 4명인 데 반해 남성 가해자는 25명이었다. 피해자 수는 여성과 남성이 37 대 27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 중에 어린이와 청소년, 이민자, 성소수자 등 약자와 소수자가 많았다.
가장 놀라웠던 지점은 작품별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물관계도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남성 피해자는 모두 가해자와 아는 사이였다. 남성 피해자 중에는 우연히, 낯모르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원한관계가 있거나, 사건에 가담했거나, 사건 현장을 목격해 제거되어야 하는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 반면 여성 피해자 중에는 길을 지나다, 가게에서, 직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또는 영문도 모른 채 괴한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마치 5년 전 오늘, 5월17일 새벽 강남역에서처럼.
통계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겠지만.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처럼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과 진실은 다르다. 통계속에 존재하는 현실과 별개로 우리가 접하는 뉴스로, '그것이 알고 싶다'로, '세상에 이런 일이'로 표현되는 세상은 또 달라서 더 두렵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구를 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좀 이해하게 되었다. 경험치가 다르면 당연히 인식이 다를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걸 간과해왔다. 나와 다르다고 해도 비판하거나 왜 그럴까 하기 보다..아 그럴수도 있겠구나..그랬겠구나 하며 누군가의 두려움을 조금은 이해해봐야겠다.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분열과 증오가 어쩌면 이해와 공감이 부족해서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