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앞 집에 새를 기르나 봐?
한 달이나 됐을까? 지저귀는 새소리가 유난스러웠다. 설거지를 할 때나 마루에서 차를 마시거나 하면 어김없이 바쁘게 지저귀는 새소리. 때론 노래 같았고, 분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다. 시끄럽기는커녕 새소리가 들릴 때마다 숲에 온 것 마냥 좋았다.
어느 날 엄마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봐라, 여기 다락방 처마밑에 새가 둥지를 지었는데, 새끼가 다섯 마리다! 아이고 귀여워라.
빽빽빾빽 우는 소리,
아기새 다섯 마리가 입을 아몬드 모양으로 활짝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한다. 깜짝이야.
난 줄게 없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분주해졌다.
엄마와 아기새를 보고 있는데 고 앞 다락 창문 앞 전기줄에 작은 새가 불안한 듯 우리를 본다. 참새만하니, 살구색 배가 동그란 작은 새. 딱새다. 조금만 날아가면 산이 있는데 왜 굳이 우리집까지 와서 둥지를 틀었을까? 산에 집 지을 곳이 마땅치 않았나? 맹금류나 청설모 같은 천적이 있나? 넌 city bird 서울새구나ㅎㅎ암튼 잘 왔어.
엄마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새를 들여다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며칠 지나 한 마리가 죽게 생겼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마리 중 네 마리는 솜털이 소복하게 나고 덩치도 제법 컸는데 유독 한 마리만 벌거숭이다. 형제들 발 밑에 깔려서 혼자 먹이를 못 먹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벌레를 잡아다 줘야 하나?" 하시더니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셨다. 강아지나 고양이 사료를 물에 불려 주면 된다는 글을 보시곤 불린 사료를 조각 내어 핀셋으로 입에 넣어주고 스포이드로 물도 먹여 주었다. 그 작은 녀석이, 안먹겠다며 입도 꾹 다물고 빼던 녀석이 조금 있으니 삐익. 하고 울고는 더 달라는 듯 입을 활짝 벌린다.
어미가 새끼들 먹이느라 힘들겠다며 둥지 옆에 좁쌀과 사료를 담은 작은 접시를 두고 옆에는 작은 종지에 물도 담아 놓았다.
아이고 얘들 좀 봐라, 밤새 다 먹었네. 접시가 텅 비었어.
그 조그만 녀석이 정말 한주먹이나 되는 모이를 벌써 다 먹었다고?
낮에 더위를 견뎌가며 다락방 창문 모기장 뒤에 숨어 몰래 지켜보았다. 세상에, 정말 어미가 새끼들에게 벌레를 잡아다 주고는 나갈 때 우리 엄마가 놓아둔 사료를 물고 나갔다.
아기 새의 어미도 작은 몸으로 모이를 나르느라 분주했지만, 우리 엄마도 지극 정성이었다. 아침저녁 사료와 물을 새로 갈아주었다. 다락이 더울까 봐 다락 아래 선풍기를 켜고 문을 열어 환기도 시켜주었다. 그렇게 새 가족이 우리 곁식구가 된 지 일주일이나 지났나, 아침에 나가는데 엄마가 말했다.
걔는 죽었어. 갈 때마다 밑에 깔려서 잘 먹지를 못하더니 오늘 아침에 보니까 죽었더라.
엄마는 하얀 휴지에 염을 하듯 새끼를 싸서 아빠에게 주었다. 산에 묻어주라고.
어제는 남아있는 아기새들이 안방까지 소풍을 나왔다.
아이코 이게 뭐야? 쿠당탕하는 소리에 나가보니 다락이 연결된 안방으로 탈출을 감행한 아기새 한 마리가 파닥파닥 대며 방을 날아다녔다. 엄마는 새를 잡다가 넘어지셨는지, 머리를 잡고 계셨다.
엄마 괜찮아?
아이고 머리야, 내가 다락에 올라갔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날아오잖아! 두통약 좀 한알 줘봐라.
그 사이 아기새는 파닥파닥 날더니 엄마의 화장대 아래 구석에 가만히 숨었다.
그럼 안보일 줄 알아?
살금살금 다가가 한 손에 잡고 다락에 올라가 둥지에 놓아주려는 사이 다른 한 놈이 탈출, 엄마가 이번에는 재빨리 검거해서 넘겨주었다. 두 마리 모두 둥지에 놓아주고 모기장으로 임시 울타리를 쳤다.
얘네들 오늘내일이면 다 출가하겠다. 새는 부화해서 두 주면 다 자란대.
퇴근하고 돌아오니 둥지가 비어있었다. 오후부터 비가 쏟아지던 날 아침부터 유난히 시끄러운 지저귐과 파닥파닥 소리가 났다고 했다.
엄마, 둥지 치울까? 얘들 모이도 이제 갖고 내려와야겠지?
며칠은 그냥 두자. 비 올지도 모르는데 얘들 갈 곳 없으면 또 올지 모르잖아.
한 번도 쓸쓸해 보인 적 없던 엄마가 쓸쓸해 보였다.
다들 밥먹을 준비 되었나?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