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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Oct 11. 2016

노벨상 발표장에 가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장 스케치

수확의 계절, 말이 살찌는 계절, 누군가에게는 외로운 계절인 가을이 왔습니다. 북유럽연구소의 유일한 연구원이자 자칭 스웨덴 전문가인 저 같은 사람에게는 노벨상의 계절이지요. 어릴 적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갈 때만 해도 나에게 천재성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되지도 않는 고민을 했더랍니다. 얼마 안 가 벡터에서 허우적대는 저 자신을 보고는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습니다. 커서는 빅뱅이론을 시청하는 것으로 과학에 대한 애정을 다독이곤 했습니다. 그래도 한때 과학자가 꿈이었던지라 매년 노벨상 발표가 날 때면 올해는 누가 어떤 연구로 수상했을까 하고는 열심히 뉴스를 찾아봅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장에 초대받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과학에 대한 열정과 노벨상에 대한 남모를 애정을 신께서 어여삐 여기사, 2015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노벨 의학상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이에요. 노벨상의 꿈을 품고 있을 꿈나무 여러분을 위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선정 과정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기나긴 결정 과정은 후보 추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노벨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매년 1월 31일까지 세계 각지의 연구자 중 노벨상의 후보를 추천합니다. 2015년 올해에는 총 327명의 과학자가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 57명이 처음 지명된 사람입니다. 즉 270명은 과거에 이미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거지요.


누가 후보를 추천하는데요?

노벨 재단의 규정에 따르면 아래의 사람들이 노벨상 후보 지명권을 가집니다.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스카 의대의 노벨 의회 회원

왕립 스웨덴 한림원의 의학, 생물학부 회원(스웨덴 및 해외 회원 포함)

노벨 의학상 또는 화학상 수상자

위의 1항에 해당하지 않는 노벨 위원회 회원

스웨덴 또는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의 의과대학 정교수

노벨 위원회가 선정한 의과대학 교수(해당 학교 의과대는 6명 이상의 교수를 보유해야 하며 이는 다양한 나라의 연구가 후보로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노벨 위원회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과학자

스스로 추천하기 없기!

노벨 의회와 노벨 위원회

일단 노벨상을 결정하는 큰 조직으로 노벨 의회가 있습니다. 총 50명으로 구성되는 노벨 의회는 후보를 추리고 수상자를 선별하는 투표에 참여합니다. 노벨 의회 안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노벨 위원회가 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후보의 지명과 선정을 담당하는 실무 조직으로 총 7명으로 구성됩니다.

다섯 명의 회원에 노벨 위원회와 노벨 의회의 사무국장이 각각 포함되지요. 수백 건의 후보작을 검토하고 행정적인 일을 수행하는데 7명은 부족합니다. 따라서 매년 노벨 의회 회원 중 10명가량을 추려 위원회 일을 돕습니다.

마리아 마수치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세포 및 분자 생물학 교수, 노벨 의회 실무 위원


그중 한 사람인 마리아 마수치 캐롤린스카 의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이탈리아에서 의대를 마치고 스웨덴으로 건너왔다가 1년만 더 있어야지 하고 40년째 머무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강한 억양에 말이 많고, 동료가 중간에 끼어들라치면 “내 시간 뺐지 마!”하고 소리치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성질을 가진 매력적인 중년 여성입니다. 재킷에 꽂은 금색 노벨 배지가 액세서리보다 먼저 눈에 띠었습니다.

1월 말에 후보 추천을 위한 비밀 초대장을 보냅니다. (오! 노벨 마크가 찍힌 편지라도 한번 받아 봤으면!) 봄과 여름 내내 노벨 위원회가 후보들의 연구물을 검토하지요. 그중에서 후보를 다시 추려 노벨 의회 전달합니다. 10월이 되면 스웨덴의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안에 있는 노벨 의회가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선정기준이 뭔데요?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명과학이나 약학 분야에서 1)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하거나 2)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할만한 발견을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노벨상은 공로상이 아닙니다. 평생을 과학에 헌신했다거나 과학계를 이끌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연구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해당 연도에 올라온 후보의 이름과 선정 과정 등은 추후 50년간 기밀로 유지됩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일정

전년 9월: 노벨상 후보 추천자로 뽑힌 3천여 명에게 노벨상 후보 추천을 위한 비밀 안내장 발송.

1월: 후보 추천 마감.

2월: 접수 마감.

3~5월: 노벨 위원회가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전문가를 초대해 후보자 평가 보고서 작성.

9월: 노벨 위원회가 의회에 보낼 최종 후보군을 추려 추천장 작성.

10월: 10월의 첫 번째 월요일에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 의회에서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투표로 선정 후 즉시 수상자에게 알림. 공식 수상자 발표.

12월: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에서 노벨상 시상식.

노벨상 수상자는 노벨 사망일인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에서 스웨덴의 왕으로부터 상장, 금메달, 상금증서를 받습니다.

2015년 10월5일 오전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발표장 입구


드디어 발표 현장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 현장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재빠르게 캐롤린스카 의대  발표장인 노벨 포럼 건물에 왔습니다. 건물 바깥에는 수상 소식을 빨리 알고 싶어 하는 무리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뭐 과학도들에게 뭘 기대하겠습니까만 바쁜 와중에 슬쩍 봐도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옷차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발표를 기다리는 취재진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신분증 검사까지 하는 확인 절차를 거치고 들어갔습니다. 무대 화면에는 노벨 금메달을 커다랗게 비춰놓았습니다. 앞자리는 주요 방송국 카메라가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발표장 구석구석에서 마이크를 들고 중계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발표 직전 현장 분위기를 중계하고 있는 스웨덴 국영텔레비전인 SVT 기자


시간이 되자 금색 배지를 단 노벨 위원회 세 사람이 줄지어 나와 무대 중앙에 앉았습니다. 뒤이어 따라온 중년의 남자가 단도직입적으로 수상자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서로 발표를 마치자 앞서 나온 세 사람 중 하나가 수상자의 연구에 대한 소개를 담은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는 다양한 질의응답이 이어졌지요.

선정 및 발표를 맡은 노벨 위원회 회원 3인. 가운데는 노벨위원회 의장인 줄린 지에라쓰 캐롤린스카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



2015 노벨의학상

올해 노벨의학상은 기생충 감염 치료법을 공동 연구한 윌리엄 캠벨(아일랜드)과 사토시 오무라(일본), 말라리아 치료연구를 이끈 전통 의학자인 추 요우요우(중국)에게 돌아갔습니다.

2015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 윌리엄 캠벨, 사토시 오무라, 추 요우요우 (왼쪽부터)


노벨 위원회는 수상자를 발표하기 직전 발표자에게 전화해 알리는데 추 요우요우 교수와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근처에 있던 일본과 중국 기자단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수상자 발표 후 마리아 마수치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많은 귀중한 연구가 있지만, 기생충 감염과 말라리아는 특히 가난한 지역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칩니다. 그 피해의 규모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인류에게 공헌한 연구에 상을 주라는 노벨상의 취지를 살려 이쪽 분야의 연구를 격려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고 했습니다. 노벨상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비단 상을 목표로 두지 않더라도 돈을 벌기 위한 연구보다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연구가 더 늘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북유럽연구소 소장 @북극여우 입니다.

노르웨이, 한국, 스웨덴에서 공부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올라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만학도로 없는 기력을 발휘해 재학 중 웁살라 대학교 대표로 세계 학생환경총회에 참가했으며 웁살라 지속 가능 발전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모 일간지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습니다. 현재 북유럽 관련 연구와 기고,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북유럽, 지속 가능성, 양극화, 사회 통합, 복지국가, 자살, 예술, 철학 etc. 저서로는『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지도자들』,『라곰』(번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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