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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Nov 09. 2016

트럼프 프루프

Trump Proof

>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  

엄마는 설마 트럼프가 되겠냐 했지만 난 트럼프가 이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2012년 한국 대선의 기억 때문에. 온라인에서 아무리 승기를 잡아봐야 빅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그만큼의 인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트럼프 지지자의 상당수가 온라인상에 잡히지 않는 다수였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나 허핑턴포스트 기사에 1000자짜리 댓글을 달며 논쟁을 벌이는 이가 트럼프를 지지할까? 내 상상 속 트럼프 지지자는 남는 시간에 유튜브의 웃긴 영상을 보면서 좋아요를 누르고, 슈퍼볼에 열광하고, 비욘세 노래를 듣고, 언쟁이라도 벌릴라치면 F*로 시작하는 단어가 먼저 나오는 사람이다. 트럼프와 비슷한 어법으로 말하는 사람들, 데이터에 잡히지 않지만 존재하는 다수. 개중에는 일베같이 비뚤어진 지적 놀음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론은 이들을 못 본 체하거나 사이코로 여길뿐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온라인 이용자는 인구의 구성을 반영하지 않는다. 인구의 일부 그것도 특정 데모그래픽만 부각된 샘플이다. 온라인을 주도하는 분위기 탓에 사람들 앞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말을 차마 못할 수도 있다. 각종 언론과 여론조사(심지어 온라인 여론조사라면 말할것도 없다)는 현실을 왜곡한다. 트럼프 지지자는 위기감을 느껴 응집하고 힐러리 지지자는 나하나 쯤 빠져도 대세에 지장 없어. 설마 트럼프가 되겠어? 한다. 온라인을 리얼리티로 착각한 댓가로 리얼리티 쇼에서 살게 됐다.


2012년 한국 대선이 떠오른다. 온라인에서는 문재인이 다 이긴 거나 다름없었다. 당시 선거 결과를 분석하던 최해선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이 이야기하길, 2012년 박근혜와 문재인의 유세 동선을 비교해보면 박근혜 쪽은 절대거리가 훨씬 길 뿐더러 재래시장 등 나이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반면 문재인은 대학로나 광장처럼 이미 온라인에서 만나고 있는 이들이 많은 곳을 다닌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온오프 더블 레이어를 공략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눈에 보이는 수면 위층을 공략하고 다진 것이다.


> 언론 탓이다.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였나 무슨 토론에서 트럼프가 대권주자가 된 것은 언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재밌으니까, 쓰면 사람들이 보니까 언론에서 자주 언급했고, 그 덕에 그가 아무 정치경험 없이 어느 틈엔게 Big shot이 됐다고.

보좌관 친구가 그랬다. 의원들은 나쁜 뉴스든 좋은 뉴스든 언론에 언급되기만 하면 좋아한다고. 설혹 악명이라 해도 유명해지는 것은 권력이니까.


> 공교육의 실패

유럽 친구들은 트럼프가 후보에 올랐다는 자체를 어이없어했다. 당선될 리가 없다고도 했다. 난 '그건 너희 기준에서지'라고 답했다. 스웨덴의 사민주의를 연구한 셰리 버먼이 말하길 "사민당이 가장 잘한 일은 스웨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민주의 정신을 심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당이 집권하든-그게 사민당이 아닐지라도-사민주의 정책을 편다고. 사민당은 성인교육에 공을 많이 들였다. 연대 정신을 강화하고 사람들을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로 내가 만난 스웨덴 사람들은 학력에 상관없이 똑똑했다. 60대 아주머니들이 요즘 뉴스에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며 그게 뭔지 배우겠다고 사회교육기관에 등록했다. 화폐 없는 경제를 꿈꾸는 모임에서는 청소부를 만났다.


나는 이번 미 대선 결과의 이면에서 공교육의 실패를 본다. 분석에도 나오듯 트럼프 지지자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저학력 백인이라고 한다. 미국의 Drop out 즉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10년 전에도 사회적 이슈였다. 정규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별다른 직업 훈련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이들, 건강보험도 없고 실업급여도 없는 즉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늘 본인보다 더 약한 자를 향하게 되어있다. 트럼프는 이들을 대신해 유색인 이민자 때문이라고 속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지지한다고 다 투표하는가?

뉴스 속 트럼프 지지자의 얼굴이 기억난다. 이를 다 드러내고 손가락질을 하며 외치던 이들에게서 어떤 광기를 보았다. 천만 원이 넘는 옷을 입고, 완벽한 문법에 그대로 받아 적어도 손 볼 데 없이 완결된 문장으로 말하는 힐러리는 그들에게 동경이 아닌 밥맛이었을지도 모른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만한 수백 가지 자질을 갖고 있어도, 힐러리에게 투표하는 이들 상당수는 트럼프 같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힐러리를 뽑자 정도였을 것이다. 광기가 넘치건, 뜨뜻미지근하건 표는 한 표지 않느냐 싶겠지만 그 광기와 열정은 실제로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느냐를 가르는 동기부여가 된다. 예의 이를 드러내며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하고 소리치던 남자의 일정은 '아침 9시에 투표한 후'로 시작되겠지만, ‘설마 트럼프가 괴겠어’하던 뜨뜻미지근한 유권자는 투표하러 갈 시간을 정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미적대고 있는데 친구가 영화라도 보러 가자고 하면 투표 정도는 쉽게 포기할 수도 있다. 어차피 누가 되든 다 똑같아. 하면서.


> 정치는 썩었다?

트럼프는 보기보다 영리하다.

구정치 대 새정치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정치인들 다 썩었다. 힐러리 스캔들 봐라. 힐러리는 오래된 정치의 표본이다. 새로운 사람이 판을 뒤집어야 한다. 거기다 나는 비즈니스를 안다. 돈을 벌 줄 안다. 경제를 살리겠다. 외교 신경 안 쓴다. 미국이 제일 중요하다. 보호무역하겠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이명박+안철수다.


> 결론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선 '민'이 똑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군주제가 나을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이 줄어들 테니까.



Picture By Gage Skidmore from Peoria, AZ, United States of America - Donald Trump,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77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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