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 있을지도 모를 긴급전화에 대한 이야기 by T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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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여파로 인터뷰 글 정리를 모른 척하고 있는 TJi에게 애청하고 있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가 글감을 제공했다. 301a. PD수첩 리와인드: KT 통신 부도의 날과 황창규의 관계 /서정문 편에서 KT 화재로 응급 상황에서 119에 전화를 걸지 못해 70대 노인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언급되었다. 유MC가 이 슬픈 이야기는 21세기에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좀 힘든 수준이라고 평하였고, 서정문 PD는 가족할인의 비극이라고 명명했으며, 위험 분산을 위해 가족끼리 다른 통신사를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핀란드에 살고 있는 TJi는 순간 머리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의 버벅댐에 화가 나 어쩌다 가끔 휴대폰을 다시 시작할 때면 마주하는 SIM card PIN 입력화면의 젤 밑에 있는 EMERGENCY CALL 버튼이 떠올랐다. 핀란드는 전화번호(심카드) 인식 없이도 긴급전화는 통신사(네트워크) 구분 없이 신호만 잡히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사용하는 통신사의 신호가 잡히지 않아서 일반전화 통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다른 통신사의 신호가 잡히면 긴급전화는 가능하다. 심지어 전화기가 잠겨있어도 긴급전화는 걸 수 있다. 이로 인해 어린아이가 부모의 잠가놓은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긴급전화를 거는 사례도 발생한다.
KT 서비스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119에 전화를 바로 걸지 못해 결국 70대 노인이 사망했다는 뉴스는 TJi가 흘려듣기에는 너무나 이상했고 안타까웠다. 한국도 통신사 상관없이 휴대폰에서는 긴급전화가 걸리지 않나 하는 의문을 품고 핀란드의 긴급전화인 112에 대해 알아봤다.
1991년, 유럽 연합 이사회는 유럽 단일 긴급전화번호 112 도입을 결정하였다. 112의 도입은 1976년 유럽 우편 전기 통신 주관청 회의(CEPT)의 권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일부 나라만 해당 권고를 받아들였다. 1991년의 결정은 유럽 연합 회원국들에게 1996년까지 112의 단일 긴급전화번호 도입을 강제하였다. 현재, 유럽 연합 회원국은 물론 여러 다른 국가들이 112를 긴급전화번호로 사용 중이며, 일부 국가들은 전통적인 긴급전화번호와 같이 112를 사용하고 있다.[1]
112는 GSM 기술의 표준으로 휴대전화 잠금 상태에서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며, 일부 나라에서는 심카드 없이도 통화 가능하다. 때문에 112가 긴급전화번호가 아닌 몇몇 나라의 경우, GSM 기술을 사용하는 휴대폰의 112 통화가 해당 나라의 긴급전화로 자동 연결되기도 한다. 112는 영국의 999와 같은 동일 숫자 사용으로 인한 우발적인 전화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었으며, 과거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 시대의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알려졌다.[2]
유럽 연합의 112 정책 안내 웹사이트에 따르면, 많은 나라의 긴급전화 상담원은 해당 나라의 언어는 물론 영어나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발신자가 자신의 위치를 모를 경우, 긴급전화 상담원이 전화기의 위치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 여행 시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해당국 언어에 대한 고민은 제쳐두고, 112로 도움 요청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112는 정말 긴급한 상황을 위한 전화이므로 교통, 날씨, 일반적인 정보에 대한 응대를 하지 않으며, 장난 전화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형사처벌 대상일 뿐 아니라, 다른 긴급한 상황의 대처를 지연시키므로 절대 시도해서는 안된다.[3] 핀란드의 경우, 지나친 장난전화는 법적으로 최대 징역 1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4]
유럽 연합의 회원국인 핀란드는 이전의 긴급전화번호를 포기하고 유럽 연합의 표준을 따라 112를 1996년부터 사용해왔다. 핀란드 112의 안내에 따르면, 112가 통화 중일 때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최대한 빨리 긴급전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긴급전화 상담원이 대기 순서대로 전화를 받기 때문이다.[5] 핀란드 통신 규제 당국인 FICORA의 긴급 통신에 관한 기술적 구현과 근거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통신사는 긴급전화와 휴대폰을 통한 긴급 문자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처리해야 하며, 긴급서비스 당국에 발신자 번호와 개인정보제공은 물론, 휴대전화의 경우 위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6],[7]
핀란드의 112 긴급대응센터는 발신자의 위치 정보 확인을 위해 '112 Suomi' 모바일 앱, AML(Advanced Mobile Location), eCall, Smart Locator, GSM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위치 추적 (긴급대응센터 요청 시 10초 내로 정보 파악 가능)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8] 긴급상황에서의 위치 정보 확인 기술 이용은 사생활 보호와 상반되지만, 개인의 생명과 공익이 우선하는 측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기술의 악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생활 보호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2015년 6월에 출시된 '112 Suomi'는 2018년 2월 기준 약 1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유럽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긴급센터 모바일 앱이다. '112 Suomi'는 앱 사용 시 모바일의 GPS 정보를 긴급센터에 전송하기 때문에 신속한 응급 상황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9]
eCall은 교통사고 대응시간과 인명피해 최소화를 위해 사고 시 자동으로 112 긴급전화 연결과 112에 위치 정보 전송하는 긴급 경보시스템이다. 2018년 3월 31일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형 자동차는 eCall 장착이 의무화되었다.[10]
AML(Advanced Mobile Location)은 핀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일부 나라들이 도입한 응급 위치기반 서비스로, 긴급전화 시 전화기의 GPS를 통한 위치 정보 문자가 긴급센터로 자동으로 보내진다. 별도의 모바일 앱 설치 없이, 긴급전화 통화 시 위치 정보가 무료로 자동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발신자의 추가적인 대응이 요구되지 않아 편리하다.[11]
TJi에게는 112는 간첩신고를 떠오르게 해 꺼려지는 번호이다. 어린 시절, 반공의 물결 속에 세뇌되었던 '범죄신고 112, 간첩신고 113' 덕택이다. 그 시절 길거리 벽 이곳저곳 붙어있던, TV에서 종종 들리던 문구의 효력은 아직도 유효한가? 어느 초등학생이 간첩 신고로 두둑한 포상금을 받았다는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까지 기억 저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현실이 새삼 놀랍다.[12]
넘쳐나는 한국의 긴급신고전화(21개)의 혼선을 해결하고자 행정안전부는 2016년부터 민원상담은 110, 범죄신고는 112, 재난신고는 119로 번호를 통합했다. 긴급신고전화 통합서비스의 추진 배경에는 세월호 사고의 아픈 기억이 깔려있다. 당시 해양사고 신고전화 122를 모르는 학생이 119로 최초 신고하여 연결 과정에서 동일한 신고 내용이 되풀이되면서 시간이 낭비되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긴급신고전화번호가 통합되었고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13]
이번 글은 '그것은 알기 싫다'를 듣고 쓰게 된 두 번째 글이다. 첫 번째 글은 출산과 육아 휴직 제도로 본 미국과 핀란드: 이상한 나라 미국 vs. 신기한 나라 핀란드이다. 이 글은 한국보다 나은 미국이라는 동경을 조금은 허물고 싶은 마음과 함께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제도를 비교함으로써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한국의 출산과 육아 휴직 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
긴급신고전화에 대한 이번 글은 앞서 언급한 다른 나라의 육아제도에 대한 글처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국민으로서 국가에게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전반적인 통신 장애에 대한 대처 마련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도 한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상되는 모든 긴급상황에서 긴급전화 연결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14] 특히, 신고자가 어린이나 장애인들과 같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한 대처도 포함했으면 좋겠다.
유럽 연합은 112의 날로 2월 11일을 정해, 유럽 단일 긴급신고번호인 112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핀란드도 매년 이날을 기념하여 다양한 장소에서 일상생활의 안전과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15] 2017년 8월, 헬싱키는 세 건의 가상 사고에 대한 긴급 서비스 모의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16] 어쩌면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은 증가시켜도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민방위 훈련에서는 무엇을 하지? 그리고 아직도 하나?
1. https://eur-lex.europa.eu/LexUriServ/LexUriServ.do?uri=CELEX:31991D0396:EN:HTML
2. https://en.wikipedia.org/wiki/112_(emergency_telephone_number)
3. https://ec.europa.eu/digital-single-market/en/112
4. https://yle.fi/uutiset/osasto/news/every_third_emergency_call_inappropriate/5573358
5. https://www.112.fi/en/emergency_number_112/emergency_number_faq
7. https://www.finlex.fi/data/normit/27699/Viestintavirasto_M_33G_2016_EN.pdf
8. https://www.112.fi/hatanumero_112/soittajan_paikantaminen
9. https://yle.fi/uutiset/3-10067493
10. https://yle.fi/uutiset/3-10330043
12.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52761&cid=47322&categoryId=47322
14. https://yle.fi/uutiset/osasto/news/emergency_calls_possible_without_a_sim_card/7178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