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4.03.29 Fri
어제 내 인생에서 다섯 번째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다섯 번째 회사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커리어라든지, 월급이라든지 이런 건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조건은 간단했다. 첫 번째, 집이랑 가까울 것. 걸어서 출근할 수 있을 정도. 두 번째, 적당한 업무에 적당한 월급. 다섯 번째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첫째 날은 어영부영 지나갔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점심이었다. 회사에서 중식은 지원되지 않고 적은 월급으로 매일 점심을 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 적이 없어서 사실 앞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생각에 조금 설레었다. 게다가 예전에 맥도널드에서 받은 귀여운 햄버거 도시락통을 사용할 일이 없어서 부엌 어딘가에 박아 두고 있었는데 드디어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들뜬 마음으로 요리한 음식을 햄버거 도시락통에 아기자기하게 담아 두 번째 출근을 했다. 업무 인계가 다음 주에 진행될 예정이라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생각 없이 모니터를 보고 앉아있자니 여기저기서 각자의 업무로 얘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고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홀로 먹으면서 왠지 모르게 모든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20대 처음 사회생활 시작했을 때 받았던 월급을 받으며, 중식제공도 되지 않아 도시락을 싸서 다니다니. 나에게도 계획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게 맞는 걸까?"라는 의심과 함께 뭔가 퇴보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직장인의 가치를 대변해 주는 건 회사 타이틀, 직급, 연봉 같은 것들이니까 말이다.
얼마 전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저자는 우리가 생산성을 측정하는 시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얼마나 빨리, 정상적인 속도로 해내고 있는가?'에 집착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시장 논리와 그 완고한 시계 바깥에서 살아 있고 작동하는 인간의 가치가 필요하다.' 나는 천천히 시계 안에서 바깥으로 걸어가 그 가치를 찾아보려고 한다. 맛있는 도시락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