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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새

내 꿈속의 엄마처럼 깊고 깊은 내 우물안에서 한껏 몸을 구기고 있다.

by 흔한사람





내 요새를 어쩔 수 없이 쌓고 있다. 열심히 방어하기 위해 쌓지만 밖이 다 보이는 투명한 요새.


어렸던 그는 적어도 나와 영원히 살고 싶어했기에 그 사랑 하나면 내가 바랄 것 하나 없다 내 스스로를 간과하고 행복한 멍청이가 되어 꿈을 꿨다. 그의 어머니와 그의 오랜 친구들은 곱씹어 곱씹어 내게 사람 바꿔놨다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었다. 대체 무엇에 보람을 느꼈던 걸까.


그는 바뀐게 하나 없었다.

바뀐 건 나였다.


생활력이 좋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칭찬으로 많이 들었다. 사실 어설프기 그지 없는데, 미성년의 소녀가장이 된 후로 부모님과 각각 사별 생이별을 한 이후니까, 당장 다음 달을 생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했을 뿐이었는데. 엎어지고 실수하면 어때, 아름씨는 대단해,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해, 내 또래 중에 가진 것 다 빼면 제일 멋있단 격려와 응원, 칭찬, 자랑을 들었었다. 어릴 때 오랜 시간 왕따를 당했었어도 사회에 나와 또 루머에 휩싸이는 일이 있어도, 존경할 수 있는 실력있는 선배와 동료들과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너무 좋았다. 그랬었구나.. 찬찬히 조금 더 오래전의 나를 기억해 보았다. 내가 잊어버린 그를 만나기 전의 나를. 내가 그랬구나.


겁이 많고, 사람이 어렵고, 사람을 마주하려면 툭하면 마비되는 안면 위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한없이 퇴화되고 고장난 나. 굳게 닫은 문을 여는게 무서워서 보름에 한 번 간신히 집근처를 나가 땅과 먼 하늘, 나무를 쫓아보며 걷고 걷는다. 생전의 아버지가 친히 그 발로 새겨 준 망가진 허리와 골반에서 덜그덕 소리가 나고 다리에 곧잘 힘이 풀려 몇번씩 휘청이다 들어오고 안도하고, 이내 고작 이 정도에 안도하고 만족해야하는 현재의 스스로를 혐오하고.


틈틈히 보이고 들려오는 미디어 속 다른 여성들의 삶이, 피해자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해자가 되버린 내 어머니와 발버둥칠수록 나 자신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 목이 메이고 조용한 내 방안에 향할 곳 없는 분노와 절망이 가득 채워진다.


눈 귀 감정 숨 다 도려내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로잡히는 잡음들을 쉽게 차버리지 못 하고 결국 감겨 안긴다.


그러길 반복하는 매일의, 수일의 끝엔 늘 간신히 떠오르는 동생의 얼굴. 내 곁에 작은 심장, 따뜻한 체온, 간지러운 털 잔뜩 남겨놓는 털뭉치들. 정신을 퍼뜩 부여잡고 나면, 그래 다시 다시, 나 원래 크고 작은 좌절거리에 묶여 있지 않았잖아- 힘들고 한심하고 구려도 금방 다시 또 시작했었잖아. 돌아가자, 아니 새로 시작하자, 제발.


간신히 쥐어짜내고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웃는 목소리, 메시지 하나둘 남기고 차근차근 다시 할 수 있을꺼야 괜찮아 부끄러워도 돼, 좀 구려도 돼, 안도하고 나면 또 다시 아직 안 끝났다고 짓누르는 기억과 존재들.


쓸데없이 선명한 기억과 감정들이 내 목을 조여온다. 머리를 고장내면 좀 덜하게 될까- 한 때 남편이라는 것이 있었을 때 어둠이 무서워 불도 못 끄고 자면서 남편이 잠든 것을 확인하면 불꺼진 화장실에 들어가 망치로 내 머리를 때렸었다. 과부하가 걸려서 고통스럽게 터져갈 뿐이라면 좀 멍청해지면 눈앞의 불행들과 고통들을 눈치 못 채고 흘릴 수 있지 않을까. 불에 타는 상상, 떨어지는 상상, 치이는 상상, 늘어지는 상상이 밤이고 낮이고 내 불면 곁에 늘 아른 거리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겁쟁이, 결행 하지도 못 할꺼면서 상상에만 그칠꺼지? 동생을 위해서라는 최후의 변명이 아니라 그냥 사는데 미련이 많은거지? 최후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한 작은 자해들이 차근차근 수위를 올려가며 습관이 되고 어떻게 멈추는거지? 어떻게 돌아가지? 고장난 기계는 버리는 게 맞잖아. 새로 사는 것보다 예산이 더 들어가는 일이라면 그 기계의 수명은 끝난거잖아.


돌고 돌고 돌아 제 자리에

끊임없이


간신히 멈췄던 내 작은 습관들이 하나둘 다시 피어오르니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이번엔 작은 습관들에 그치지 않을지도 몰라, 정말 저질러 버릴지도 몰라. 작별하고 남들 다 견뎌내는 고달픈 삶 버리고 이기적인 내가 되어 혼자 편해질지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상은 지금의 하찮은 내겐 너무나 높아서, 충족되지 않는 내 지금이 혐오스러워 다 뜯어놓고 싶다. 그렇구나. 그 최선을 조금 내려놓으면 편하지 않겠어? 안 돼. 그 최선의 이상을 해야 내가 사람처럼 살아. 그걸 못 하면 그냥 가치가 없어.


그렇구나.


그래도 버텨야지.

그럼 딱 하나만 하지말자.

딱 하나만.


조금만 이야기를 잘 못 나누면 저지를 상태라 상담 못 하겠다 무섭다고 했던 사람 좋던 선생님. 입원해서 모든 일상을 한동안 약물과 의료인들에게 의지해서 정신세척, 마음세척을 받고 나면, 효과가 있을까? 그 다음엔 또 난 분명 최선의 내가 되길 희망할텐데, 그것에만 가치를 둘텐데. 내가 그렇게 정말 많은 돈 들어가는 마네킹이 된 후에 내가 바라는 만큼 일하고 섞일 수 있을까.


참,

누구나 저마다 내가 바라는 알사탕을 물고 살수야 없는게 사는 것이겠지만. 이 만듦새 참 유약하고 하찮다. 차라리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너 처음부터 사람 아니었어, 네 괴로움은 다 인공지능의 허상이야.'라고 생각했더니 알 수 없는 바이러스들이 다 나았다는 해피엔딩이 되면 참 좋을텐데.



이 구역질나는 배설로 조금은 나아져줄래.




Photo by Tomas Robert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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