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0원, 몽쉘 한 개, 우울증.
주마다 병원을 옮기기 시작했다.
상담을 중단하고 당장 정신병원에 보호자 도움으로 입원하라며
약도 적당히 지어주는 선생님들을 만나니까. 다시 갈 용기가 안 났다.
낯선 선생님들로부터 또 왔냐고 질려하는 얼굴을 볼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내가 온몸에 골절과 신경이 박살났는데도 가정의학과를 오는 꼴이라고 말하며
미간을 찌푸리던 한 선생님의 표정이 선하다.
진짜 나를 보는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질색하고 경멸하며 멀리 하고 싶어하겠지-
하고 당연히 여겨 숨겨왔던 것인데
병원에서조차 그러니까 이런 나라도 좀 새롭게 상처받은 것 같다.
잘못 상담했다간 내가 죽을 것 같은가.. 그럼 재수 옴 붙은 거니까, 현명한 선생님이시네.
그래도 당분간만 날 버티게 해 줄 약이 필요해.
이번주에 다 떨어져 가는 약을 얻으러
새롭게 찾아간 허름한 빌딩의 여기 병원 선생님은-
내 주제에 안 맞게 하필 내가 만났던 어떤 선생님보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진심으로 날 동정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연기해줬다.
내 나름대로 약 10여년간 어찌할 수 없이 짙어진 공황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 등을 겪으며 느낀건
가족, 연인, 선생님이 20년차 중견배우처럼 적어도 내 앞에서 날 똑바로 바라보며 거부하거나 질책하지않고 꾸준히 연기해 줘야 한다는 거..
사실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도 나를 속이는 일에 늘 실패하는데, 그런 무리한 연기 어차피 예쁜.. 내 사람들에게 짊어지게 하고 싶지도 않고, 또 그들이 그런 어려운 연기에 실패하는 사소한 순간들을 송곳처럼 낚아채서 굳이 굳이 내 가슴으로 마구 찔러댈 말 그대로 피곤하게 미친 내 자신도 싫다.
예정보다 길어진 상담에서
다음으로 자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얄팍한 자해는 따갑기만 하고 너무 빨리 아물어서 제대로 살지도 죽지도 못 하는 자신에게 혐오감만 더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아스팔트에 내 뇌수와 내장이 터져나갔으면 하는 충동을 멈추는덴 즉효다.
별거 아닌게 드럽게 겁나게 하고 아프니까.
씻을때마다 소매에 스칠때마다 무의식중에 긁을때마다 무뎌졌던 생각이 조금은 "이런 짓 그만해야지"란 생각을 하게 해주니까.
그렇게 소원하는 죽음을 잠시나마 두려워하게 해주니까.
나를 충동에서 버티게 해주고 위로해주는 건 이런 얄팍한 추태뿐이다.
이번에도 입원을 해야한단 말은 들었지만.
두달만 버티게 도와달라며 우는
처음보는 나같은 쓰레기에게
3일뒤에 또 보자며 숙제도 해오라며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두달을 버티게 해달란 말에
꼭 두달뒤에 죽겠단 말처럼 들린다고
살아야지 않겠냐고 물으셔서
죽어도 되는 이유는 너무 많고,
살아야할 기력도 의지도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더 살아야 하냐고 되묻자
흔한 말 더 이상 안 붙이며
그냥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잠시 계셨다.
단, 어린 시절에 겪었던 지속적인 유사강간에 대한 트라우마는 남자 의사인 본인보다도 여기에 종종 전화 해보라고 직통 성폭력 상담 센터 번호를 포스트잇에 챙겨주셨다.
포스트잇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꾸준히 해서 치료와 지원이 필요한 상태인 게 증명되면 내원해서 이렇게 약받고 상담하는 비용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귀띔만 해주시고 내가 쉽게 해낼꺼라 기대하지도 않아주었고,
그 흔한 힘내라는 위로의 강요도 하지 않으셨다.
...
선생님 9,800원에 너무 많은 걸
저 따위에게 해주시는 거 아닙니까.
무언가 이루말할 수 없이
더 사무치게 외롭고 슬펐다.
분명 내 상태를 낯선 이에게 말하는 덴 이골이 났을텐데-
정처없이 떠돌다가
집에 있으면 애꿎은 동생앞에서 사고칠 것 같아서
마감시간이 빠듯한 코인노래방에 지금 들어가도 되냐고 묻고 1시간 어치를 지불하고 작은 방을 빌렸다.
혼자 추하게 히끅이다가도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가 또 터져나오는 설움이 마이크의 힘을 받아 나빼고 다 흥이 난 다른 방에 들릴까 창피하고 혐오스러워 작은 방의 문을 통해 바깥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와중에 정말 너무 오랜만에 온 노래방이라
알뜰하게 1시간 꼭 채우고 나오니까
이미 다 퇴실한 매장을 청소하던 사장님이
몽쉘 한개를 어색하게 내밀어 주셨다.
서비스라고.
그렇게 방황하고 또 잠못 이루고 있으니
온 마음 다 해 날 위해주고 조심스러워하는 동생으로부터 고작 이런 정신병자의 가족도 유리같은 사람이니까 지쳐서 할 수 있는 말 조금 했다고 새벽 4시즈음에 이런걸 보내왔다.
난 이걸 반복해서 들을 용기도 자격도 없는 내 자신의 못남에 지긋지긋하면서도, 또 한번 그냥 좀 살아보자, 나 자신을 위할 수 없다면 제발 아무 죄없는 예쁜 네 사람들을 위해 좀 조용히 곱게 미쳐 악취 풍기지 말고 들키지 말고 조용히 좀 살자.. 라고 얼마 못 갈 다짐을 한다.
비효율적이고 어그러진 방법이라도
나같은게 계속 하루를 이어가려면
누군가의 희생과 이악문 애정이 계속 필요한 거다.
희망과 절망은 동전같다.
이 동전을 쥐고 있는한은 어떻게든 버틸테지.
전부 다 내가 미안해.
전부 다 한심한 내 잘못이야.
살아있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