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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don't have to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 싫은 한 가지.

by 흔한사람

내 생각과 우울의 뿌리가 깊고 생명력이 질긴 걸 누구보다 제일 지긋지긋하게 잘 아는 게 나 자신이다. 나는 나와 사는 일을 거부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으니까 살아온 시간만큼 진절머리가 나고 토할 것 처럼 혐오스럽다.


그렇게 깊어가고나니 같은 의사선생님에게도 반복해서 찾아가는게 어렵다. 애꿎은 사람에게 의사라는 이유로 더러운 나와 멀미를 유도하는 끝이 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내 말들을 듣게 하는게 죄스럽고 창피한 걸. 게다가 사람이니까, 심지어 가족도 힘든 일을 타인이니까 사실은 날 지겨워하고 경멸하겠지 하는 두려움에 날 숨기고 싶어진다.

동생이 날 위해 백단위 최면상담진료에 사비를 들여 데려간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 선생님에게 또 다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일도 내 동생이 나때문에 그런 큰 돈을 내고 내가 뱉는 배설물들을 옆에서 보호자라는 무거운 자리를 떠맡아 앉아있는 것도 미안하고 어려워서 두번째 면담때는 시종일관 웃었다. 괜찮아진 것 같다며. 최면도 안 듣는 것 같다며 누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듯 깔깔 큭큭 거리며 웃었다. 이미 충분히 동생의 사랑을 꺼내서 보여주어줬다고. 형태가 없는데다 너무 많이 변질된 내 안에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있는 힘을 다 해 예쁜 내 동생이 내게 보여주려 애쓰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편하게 그 돈 다 써가며 울고 말하고 추태를 부릴까..

내가 온전히 날 다 보여주며 계속해서 교감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너무나 감사하게도 있다하면 나는 그렇게나 귀한 상대를 나 따위를 보느라 혹사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딜레마에 또 빠질테고 결국 나는 영원히 이런 나 자신과 그걸 바라보는 나 자신, 수없이 엉망이고 다채롭게 별로인 "나"들과 숨쉬겠지.

나를 바라보는 건 나를 사랑해줄 소중한 사람에게 너무 지독한 벌이고 폭력이야.


내가 혼자가 되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 역시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누구도 나 때문에 괴롭지 않은 선택이 있어.


나는 어차피 어떻게도 행복하긴 글러먹었으니까,

죽을만큼 외롭고 슬프고 무서워도 괜찮아.




이런 배설물 글 보느라 에너지 소비하는 누군가들에게 또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지울지 모를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쓰는 건 이렇게라도 안 하면 글 쓰는 것 말고 미칠까봐, 정말 멍청한 짓을 할까봐. 이성적으로 내가 잘 살아내길 바라니까 또 배설해 본다.

이 짓은 내가 스낵에 의존하는 것과도 비슷해서
잠시뿐이지만.. 그래도 이 잠시가 모이고 모이면 꽤 시간벌이가 될테고, 그렇게 번 시간 안에서 내가 또 바뀌거나 잘 해낼 수도 있으니까.


무한히 반복되는 "다음"엔 더 나은 내가 되어

안심하고 잠들 수도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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