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6-8
29살 늦가을, 그렇게 나는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
20대 후반에는 어느 정도 안정된 삶에, 찬찬히 커리어를 쌓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애초에 회사생활을 늦게 시작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며 전직까지 해서 정말 어중간한.. 나이만 찬 신입이었다.
구직 활동을 하며 여러 회사를 찾아봤지만, 나를 위한 곳은 없어보였다.
내가 원하는 곳은, 내가 가진 것 이상 스펙을 갖춰야 했고, 내가 갈 수 있을만한 곳은 회사 정보나 조건만 봐도 열악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어딘가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히 취직해서 돈도 벌고, 경력도 쌓아야 했지만, 또 다시 사람에 실망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취직해야만 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전직을 했다.
회사를 나에 맞출 수 없으니 내가 회사에 맞출 수 밖에.. 내가 가진 경험과 능력으로 취직이 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다룰 줄 알고, 원래 전공이었던 광고홍보학 이력을 앞세워 회사의 홍보팀, 마케팅팀 그리고 마케팅 회사 등에 지원하며 마케터로 지원했다.
다행히 몇 곳에서 연락을 받아 홍보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케터로 전직해서 처음 들어간 곳은 병원이었는데..
입사하고 보니 가족회사였다.(가족과 친구들이 직원인...)
팀에 부장이 병원장의 가족이었다. 직원들을 하대하며, 부를 때 호칭은 '야, 너, **아'였다. 그리고 심심하면 개인 면담이라며 여직원들을 한 명씩 불러내 커피 마시자며 카페에 데려갔다.(나도 몇 번 불려갔다.)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워크샵에서 성추행 비슷한 행동도 했다하고, 친해지면 민감할 수 있는 사적인 질문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 분과는 가능한 거리를 둬야겠다 생각했다.
수습 기간이라, 부장도 나에게 조심했고, 한번씩 불려가더라도 주로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며,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호의적으로 대했다.
그렇게 불안불안하게 한 달의 수습기간을 거의 채워가던 중 하루는 부장이 나를 불러, "그동안은 수습이라 '**씨'라 불렀는데, 이제는 편하게 부를게요. 괜찮지?" 라고 했다.
나는 내 입장을 확실히 해야할 것 같았기에, "아뇨, 지킬 부분은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리고 당일 퇴근 직전, 나는 퇴사 통보를 받았고,
그렇게 마케터로서 나의 첫 번째 이직은 실패했다.
업무 능력 문제가 아니라, '야, 너'로는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부장의 눈 밖에 났고, 어이없이 퇴사 통보까지 받고서..
새삼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을인 존재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재취업을 하더라도 회사에 절대 오래 다니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