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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묶음빵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32

by 노루

빵집의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갈 때면, 꽤 많은 매장에서 묶음빵을 내놓는다. 랜덤으로 이것저것을 모아 만원에 묶는다. 정가로 따지면 만원 초반이나 중반쯤이 될 것이다. 품목은 그날그날 남는 빵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랜덤이다. 내가 어릴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프랜차이즈 빵집도 그랬고, 요즘 한참 재미 들린 마트 안 베이커리 코너도 그렇다. 나는 이 만원 묶음빵을 정말 좋아한다.


만원 묶음빵 코너는 시간이 좀 있을 때 가야 한다. 뒤에 약속이 있으면 충분히 고민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안 된다. 일단 머릿속에 필요한 빵이 있고, 먹고 싶지 않은 빵이 있다. 나는 팥이 들어간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완두 앙금도 슈크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패스츄리 종류는 좋다 생크림이랑 땅콩크림도 좋다. 소보로도 좋다. 피자빵은 남편이 좋아한다. 식빵은 필요할 때가 있다. 좋아하는 품목의 정도를 따지기보다는 싫어하는 품목이 없는 쪽을 좋아한다. 이런 걸 모두모두 종합해서 그날의 딱 맞는 묶음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담백한 식사빵과 버터맛이 많이 나는 빵이 기본으로 들어있는 게 좋고 거기에 남편이 먹을 소시지빵이 들어있으면 금상첨화. 커피랑 먹기 좋은 작고 단 빵이 끼워져 있으면 최고다. 요즘엔 어느 빵집을 가든 이렇게 두세 종류를 담으면 만 오천 원이 넘는데 만원 묶음빵으로 얻어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빨리 먹지 않을 빵은 냉동실로 직행이라 지금도 냉동실에 치즈롤이 얼어있다. 사실 맞벌이 2인 가구에게는 빵 먹을 시간도 많지가 않다.


묶어서 할인해 주는 행사는 고민할 시간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실은 더 나은 조합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더 쓰게 만든다. 나는 그 고민을 좋아한다. 소금빵을 주말 낮에 커피랑 먹고 소시지빵은 오빠 내일 간식으로 먹으라고 하고, 큰 모카빵은 놀러 갈 때 가져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 순간 그 만원 묶음빵은 금주의 가장 잘한 소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잘 샀다'는 뿌듯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집어간 빵을 한입 가득 물었을 때의 고소한 버터향까지. 고민에서 구매와 체험에 이르기까지, 만원 묶음빵은 정말 만족스러운 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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