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34
결혼하고 처음 집을 꾸밀 때 네모난 화분에 담긴 스파티필름을 데려왔다. 이유는 딱 하나. 키우기 쉬운 무던한 녀석이라고 해서. 식물이 우리 집에서 죽지 않았으면 했다. 딱히 예쁜 곳은 없었지만 길쭉한 잎사귀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건강해 보였다. 그렇게 처음 식물을 들였다.
다이소에서 산 바질과 시금치 씨앗을 틔우고, 여름에 먹던 체리와 레몬 씨도 틔웠다. 별거하지 않아도 촉촉한 흙에서 떡잎을 쑤욱 밀어내는 힘이 정말 신기하고 기특하다. 그렇게 떡잎을 낸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만든다. 그땐 나도 덩달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되어 퇴근하면 화분부터 보러 오곤 했다. 그렇게 반갑다. 근데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다.
처음엔 물만 잘못 줘도 폭 고꾸라지는 연약한 줄기라 이유도 모르게 죽어버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체리랑 레몬은 그렇게 잎 다섯 장을 힘들게 달고도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나는 식물을 잘 모른다. 내가 겁 없이 발아에 도전했던 씨앗들은 내 무지 때문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물이 죽고 빈 화분을 정리하다 보면 다음엔 뭘 더 해봐야 할지 생각도 해본다. 물을 많이 줬나. 배수가 너무 안 됐나.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본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뭔가 계속 기대하게 된다. 오늘은 씨앗이 갈라졌을까, 오늘은 떡잎이 나왔을까, 뿌리를 내렸을까, 얼마나 키가 컸을까, 새 잎이 나왔을까, 꽃대가 올라왔을까, 열매를 맺는다는데 그건 언제쯤 맺을까! 기다리는 일이 생긴다는 건 사람을 힘나게 하고, 나는 그래서 새 씨앗을 심어두면 기분이 들뜬다. 그래서 화분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것 같을 때면 좀 정리해야 할까 싶다가도 그러지 못한다. 힘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지면 씨앗을 틔운다. 그 힘을 닮고 싶어서 씨앗을 틔운다. 식물은 세상에 이롭다는데, 그 세상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내 서툰 손에도 기어코 싹을 틔우는 식물은 고맙다.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