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마다 도서관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48

by 노루

눈이 일찍 떠졌는데 피곤하지 않고 날씨도 좋을 때, 아침에 씻고 나니 왠지 마음이 붕붕 뜰 때, 그럴 때 나는 괜히 할 일도 없으면서 불쑥 집을 나설 때가 있다. 운동삼아,라는 마음으로 동네 여기저기를 돌면서 구경하다가 다리가 슬 뻐근하고 날이 좀 쌀쌀하다,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목이 좀 마른데 여전히 집에 가기는 아쉽다고 느껴지면 참새 방앗간처럼 동네 도서관 문을 연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도서관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4~5층 되는 오래된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며, 자료실 2개에 열람실을 따로 두고 회의 시설이나 강당, 영화를 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실에 식당과 매점까지 둔 곳이 도서관이었다. 나는 어릴 적 그곳에서 엄마와 책을 고르거나 헤드폰을 쓰고 라이언킹을 봤다. 좀 커서는 때마다 친구들과 시험공부를 했다. 일부러 버스를 타야 도서관에 갈 수 있었는데 그래도 일부러 갔다. 식당 메뉴와 자판기 코코아 같은 것들을 기대하며.


서른이 넘어서도 역시 제일 마음 놓고 들어오게 되는 곳은 종합자료실이다. 나는 주로 문학 쪽을 좋아한다. 800번. 그리고 입구랑 제일 가까운 신간 코너. 나무냄새가 나는 서가와 삐그덕거리는 바닥을 지나다 보면 책장 칸칸이 빽빽하게도 꽂힌 책들이 가득인데, 그 제목만 쓱 훑어도 내가 상상도 못 해 본 문장과 단어의 조합이 가득이라 마음이 조금 설렌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빌린 책은 못 읽은 채 반납하기 일쑤지만 그렇게 한없이 고요하고 온유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낡은 냄새가 가득한 책 등을 손끝으로 훑어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드는 한 권을 꺼내 펼치면, 가득 인쇄된 활자에 폭 몸을 담그는 것 같은 아늑함이 있다. 무언가를 말하고 전하고 기록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남긴 흔적이 있다. 한두 페이지만 읽어도 금방 머릿속에 그려지는 누군가의 세상은 나를 환기시키고 잠시나마 다른 다짐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도서관은 어떤 힘이 있길래 유모차 탄 아이도 울거나 떼쓰지 않고 조용하게 만드는지, 신기한 일이다. 언제든 따뜻하고 아늑한 동네 도서관. 늘 단정하고 수수한 도서관은 아이가 생기면 꼭 손을 잡고 자주 들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 고요가 주는 마음의 안정과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아날로그 콘텐츠는 요즘 세상에서 점점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언제든 그 자리에서 기다려 줄 거니까. 한참을 잊고 살다 찾아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곳. 언제 돌아가도 여전히 편안한 그곳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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