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47
소공녀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고전 명작 동화책을 보다 보면 그들의 식탁에는 항상 그게 있었다. 노릇노릇 식사빵, 선명한 오렌지 주스, 탐스러운 포도, 아니 그거 말고 노랗고 네모난데 지우개도 비누도 자른 감자도 아닌 것. 모서리는 동그스름하게 녹아 흘러내린, 누군가의 나이프가 닿으면 폭 하고 저항 없이 패이는 부드러운 것. 무슨 맛인진 몰라도 왠지 침이 고이던 상상 속의 음식이었다. 내게 버터라는 것은.
버터의 맛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건 언젠가 알루미늄 케이스 속 버터쿠키를 먹었을 때였다. 이거 무슨 맛이지? 내 머릿속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맛을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고소하고 향긋하고 포근하고 노곤하고 부드럽고, 음식에 붙여도 되는 말인가 싶었지만 왠지 그랬던 것이다. 그냥 눈을 감고 으음~ 하고 싶은 맛. 버터의 맛이었다. 풍미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 충만하고 따뜻한 맛이라면 사람도 아닌 것이 괜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에는 그런 힘이 있다.
버터의 미각, 후각, 시각적 이미지는 하나같이 어떤 아늑함으로 향했다. 연노랑의 말랑하고 녹아내리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아늑함. 그것은 왠지 사람을 무장해제하게 만들곤 한다. 버터 얹은 치아바타를 씹으면 씹을수록 진해지는 고소함, 김이 펄펄 나는 새 밥에 간장 한술과 버터를 비빌 때의 그 향기와 수저가 부드럽게 폭폭 들어가는 푸근함, 팬에 버터를 녹이고 다진 마늘을 볶을 때 순식간에 공간을 채우는 맛있는 냄새, 갓 구워진 소금빵을 베어물 때 주륵 터져 풍성하게 입안을 감싸는 따뜻함은 하나같이 나를 토닥토닥 달랜다. 뜨뜻한 방바닥에 펼쳐진 이부자리에서 이리 들어오라고 묵직한 솜이불을 들춰주는 누군가처럼.
얼마 전에 집 앞 마트에서 산 가염버터는 꽤 간간해서 빵에 발라먹으면 꼭 치즈 같다. 요즘은 빵에 버터와 콩포트를 반반 발라먹는 데 재미를 붙였다. 버터 하나면 나는 꽤 만족스러워진다. 10이면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13을 만나게 된 사람처럼. 가끔씩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만큼만 호사스러워져도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니까 버터 한 팩이면 딱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