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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an 10. 2021

30년 맛집, 8탄-부산 곰장어 성일집 vs 원일집

부산하면 곰장어, 곰장어 하면 부산

최근 부산 출장이 많아 전에 없던 복에 겨운 상황이다. 부산하면 곰장어가 유명하다는 걸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예전에 자갈치시장에서 맛본 곰장어만 해도 나의 미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방문한 두 집은 나의 지난 곰장어 맛집에 대한 기준을 확 틀어버리게 했다. 물론 두 식당 모두 빗맞아도 30년 시리즈에 출연해도 될 정도로 오랜 세월 같은 당소에서 영업을 해온 곳이다.


곰장어는 먹장어라고도 하는데, 학명으로 보면 먹장어목 꾀장어과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다른 어류에 기생하여 내장을 파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하는데 갑자기 내가 먹었던 게 과연 곰장어 맞나 싶다. 아무튼 곰장어는 부산에서 꼼장어라 불리는데 하도 꼼지락거려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됐는데, 곰장어는 원래 가죽만 쓰고 버리던 생선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쓸모도 없고 재수 없다 하여 어선에서 그물 작업하며 바로 버린다 하여 물텀벙이로 불렸던 아귀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나중에 아귀 요리를 두고 한번 소개하긴 하겠지만 아무튼 오늘은 곰장어가 주인공이니 넘어가도록 한다.



부산역 근처에 위치한 성일집은 1950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곳이라 한다. 사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역사를 가진 곳이다. 6.25 전쟁의 중심지나 마찬가지였을 서울에서 지속적인 영업이 가능했을 식당이 있었을 거란 상상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땠을까? 전쟁통이었음에도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부산은 최후의 항거지나 마찬가지였고 피난 내려온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 그러진 당시 부산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아무튼 성일집은 6.25 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에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3대째인 손자가 식당을 맡아 운영하는데 재밌는 게 건축을 전공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후미진 곳에 위치한 성일집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찾아올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든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 맛집이라는 설명이 불필요한 것 같다.



맛집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방송 출연 관련 자로들이 이 집에도 인테리어를 대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야 별로 내켜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식당 주인 입장에선 당당히 내걸고 싶은 자신감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알 만한 방송엔 어지간히 출현한 식당인 걸 이렇게 증명한다.


본 메뉴가 차랴지기도 전에 술을 부르는 안주가 내어져 어쩔 수없이 초반부터 술병이 개봉된다. 절대 의식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내장으로 만든 편육 같은 건데 전엔 먹어본 적 없는 판타스틱한 요리였다. 노하우가 없으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요리인 것이다. 이걸 서비스로 주는데 무한정 얻어먹을 수는 없는 한정판이다.


식전에 주는 재첩국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애피타이저였다. 민물조개인 재첩과 바다 밑바닥에 사는 곰장어가 궁합이 맞나 싶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따로 찾아보진 않았다. 왜냐고? 맛있으니까! 미리 반쯤 익혀 나온 곰장어 소금구이는 양파, 파, 고추, 버섯 등 갖은 야채와 버무려져 고소한 내음을 풍기기 시작했다. 빨리 집어먹고 싶을 만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식탐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이 좀 크게 올려졌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사진 한 컷으로 이 맛이 전달될 수만 있다면야. 이 아삭하고 쫄깃한 식감을 어찌 표현하리오. 수족관에 마구 엉켜있던 곰장어 무리가 기억났다. 흔히 알다시피 장사 잘 되는 집 식재료가 싱싱한 건 피해 갈 수 없는 진실인 듯, 성일집 곰장어는 방금 바다에서 건져내 구워 먹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싱싱함을 그대로 재현했다.



황당해 보이겠지만 이 날은 업무차 미팅 겸 해서 방문한 곳이라 8명(4인 이상 금지 전) 정도의 인원이었기도 하고, 간 김에 파는 건 다 먹어봐야 하겠기에 양념구이도 주문하고 말았다. 피해 갈 수 없으면 먹어야지. 배가 터지더라도 말이다. 매콤한 양념이 배어든 곰장어는 소금구이와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곰장어 특유의 고소함을 즐기려면 아무래도 소금구이가 훨씬 매력적인 것 같다.

이 날은 얼마나 무식하게 먹어댔던지 곰장어만 가지고 배를 가득 채우고 나왔다. 하지만 거북한 포만감 때문에 후회스럽거나 하진 않은 것이 이런 맛 좋은 음식을 더 채우고 나오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본다.







성일집에 이어 찾아간 원일산곰장어. 이 식당은 위치부터가 황당하다. 부전동의 부전역 옆에 엉뚱하게 자리 잡은 가건물인데 옆으로는 부전시장이다. 부전역이 주인인지 원일산곰장어가 주인인지 모를 부전역 앞 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떡 하니 마주하게 되는 이 곳. 관광객들보다는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원일산곰장어는 입구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옛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대는 기대 이상의 만족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입구에서는 요즘 보기 힘든 구공탄 연탄불을 지피고 있고 건물 안에 들어서면 아주머니의 날렵한 칼날이 휘둘러질 때마다 기다란 곰장어가 꿈틀거리다 조각나고 만다. 동영상 촬영을 해둔 것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스마트폰 용량 문제로 삭제해 버렸는데 지금 이 글을 쓰겠노라 작정하고 보니 너무 아쉽기만 하다. 그걸 꼭 보여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포렌식이라도? ㅋ



가격은 보다시피 저렴한 편에 속한다. 나이 지긋하신 부산 아지매 두 분이 운영하시는 것 같던데 여기는 몇 년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역주민에게 들은 바, 30년은 당연히 넘었다고 한다고 하니 빗맞아도 30년 시리즈에 포함시켜도 된다고 판단했다. 생방송투데이 같은 방송에도 소개된 작이 있다고 하니 맛집이란 건 이미 인증된 사실인 거다.



소금구이가 연탄불 위에 올려진 후 우리 일행은 소주잔을 부딪쳤다. 보라! 사진으로 이미 끝났다. 고소함이나 오독 거리는 곰장어의 식감은 부산 아지매들의 손끝을 거쳐 부산엔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완성판, 한정판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도 역시 소금구이, 양념구이  풀코스다. 연탄불의 은은한 열기에 익은 싱싱한 곰장어들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매콤한 양념구이는 없던 식욕도 불러일으키고 지칠 줄 모르게 만드는 젓가락질을 구사하게 만들고 만다. 청양고추와 함께 버무린 매운맛 양념 곰장어는 아쉬움을 남기게 만드는데 주문 시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주문 들어오면 수족관에서 곰장어를 바로 꺼내 조선시대 정육점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묵직한 쇠칼에 툭툭 썰어져 고통 속에 마구 꿈틀거리는 싱싱한의 극치를 거쳐 상 위에 놓이는 것이니 묵묵한 기다림은 필수다.


마무리는 역시 볶음밥. 말해 무엇하랴? 배가 터질 것 같은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숟가락질을 발견했다면 이미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맛은 추억이라 했다. 부산에서 맛보는 30년 이상 된 오랜 역사적 맛의 진실, 곰장어 맛에는 부산 아지매들의 깊은 손맛을 맛보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부산으로 뛰어가야 할 판이다.

다음 주엔 어느 집에 가려나~ 또 기대만발이다.





서울엔 왜 이런 곳이 없는 걸까?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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