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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an 14. 2021

30년 맛집, 14탄-부산 선동 88집 향어회

이것저것 안 먹어본 것 없이 다 먹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부산 선동이라는 평생 처음 가본 곳에서 평생 처음으로 향어회를 먹어봤다. 역시 세상은 모르는 게 더 많은 법이라는 걸 새삼 느낀 하루였다.

차는 부산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가는가 싶더니 외곽 아닌 외곽으로 꾸역꾸역 접어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알았지만 선동이라는 난생처음 가본 지역이었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회동유원지에 위치한 88집은 부산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수영강이 흐르는 회동유원지에는 88집 같은 식당들이 몇 개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물어가는 상황이었고 간판 사진은 음식을 맛나게 먹고 나와 촬영한 것이다. 88집이라는 간판이 달려있지만 안에는 88횟집으로 나와있고, 지도에도 88횟집으로 안내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튼 이 식당에 들어서니 오랜 시골집 분위기가 향토스러움을 자아냈고, 식당이라기보다는 아는 친구네 집에 들러 어머니가 해주시는 진수성찬을 얻어먹고 돌아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간판에 보다시피 이 식당은 향어회를 주 요리로 하는 듯했다. 메기매운탕, 잉어찜, 잉어매운탕, 붕어찜이 있고 육류로는 오리불고기, 오리백숙, 오리탕, 닭백숙, 닭찜이 있었다.

* 닭도리탕이 닭+도리(일본어)라고 잘못 알려진 적이 있었는데 무식한 국어학자의 무식한 해석이었다는 게 알려져 한동안 시끌벅쩍했었는데 지금까지 닭도리탕이 일본어가 섞인 잘못된 단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이라고 돌려 부른 시절도 있었는데 '도리'는 순수 우리말로 '도리치기'라는 요리법이라고 밝혀진 바 있다.

아무튼 여긴 민물생선과 함께 닭과 오리 요리도 함께 준비되어 있는 식당이다.



점점 클로즈업되는 듯한 느낌인가? 사진엔 제대로 안 나왔지만 맨 왼쪽 사진은 아주머니 두 분이 밖에서 음식이 차려진 상을 번쩍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통째로 촬영한 것이다. 일반 식당과 달리 88집엔 테이블이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좌식이라 좀 불편할 순 있지만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있으면 이렇게 상이 통째로 방 안으로 운송된다. 생전 처음 보는 비주얼의 향어회가 두 접시 담겨 들어오고 있다. 식감은...... 어지간한 바닷고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오독오독하고 쫄깃하다. 비린내 같은 건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런 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이게 과연 민물생선이 맞는가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향어회를 즐겨먹지 않지만 이십여 년 전 민물생선을 유통하는 선배에게 주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동남아에서 들어온 근로자들은 자기들끼리 향어를 사다가 회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다. 향어를 왜 먹나 했더니 바로 이런 맛이었던 것이다. 색감도 좋고 식감도 좋다. 한참 씹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향어회와 함께 오리불고기도 상 위에 차려졌는데 솔직히 말해 오리요리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워낙 많이 먹어서 그랬을까? 딱히 대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어쨌든 난 향어회 하나에 반해 88집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일행 중에 민물생선을 꺼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메뉴를 함께 주문하면 부담스러울 일은 없을 것 같다.



솔직히 까놓고(솔까) 말해서, 향어매운탕도 정말 수준급이다. 보통은 민물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일 경우 흙냄새가 나서 거북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여긴 그런 게 전혀 없다. 오랜 세월 업그레이드되었을 노하우가 이 안에 다 녹아있는 것이다. 배만 부르지 않았다면 바닥까지 다 비우고 싶었을 정도로 식탐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인데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도심 여느 지역에 가서도 능히 이름값 날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양념을 아끼지 않는 시골 아주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느껴지게 하는 향어매운탕이었다고 장담한다.

다음에 또 가볼 기회가 있다면 양 조절을 잘해서 향어매운탕을 깊이 음미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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